친구들과 밤새도록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두근거리는 설렘이나 뜨거운 열정을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 앞에서 막연해지고 말죠. 어쩌면 그 질문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우리를 따라다닐 겁니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한 연회에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사랑'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펼쳤죠. 그들의 이야기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 <심포지엄>에서 펼쳐진 사랑론입니다.
플라톤의 사랑론: 영혼의 비상을 위한 에로스
• 우리는 육체적인 아름다움에서 시작해 점차 정신적인 아름다움, 지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데아)'로 상승합니다.
• 이 사랑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개인적인 욕망을 넘어 보편적인 진리와 연결되며, 더욱 충만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2.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한 적이 있나요?
3.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가장 높은 단계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무엇과 연결되어 있나요?
플라톤은 왜 '사랑'을 이야기했을까?
플라톤이 활동하던 고대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황금기이자 동시에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소피스트들이 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며 사회적 혼란을 부추겼고, 스승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플라톤은 이 모든 것을 보며 진정한 '선(善)'과 '아름다움', 그리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러한 궁극적인 가치들이 실재하며, 인간은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죠. 그리고 그 동력이 바로 '사랑', 즉 에로스였습니다.
플라톤의 <심포지엄>은 고대 아테네의 한 연회에서 벌어진 대화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아가톤이라는 비극 작가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해 각자의 찬사를 바칩니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현명한 여인 디오티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인용하며,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영혼을 진리와 선으로 이끄는 '사다리'임을 역설합니다. 이 대화들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삶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치열한 철학적 탐구였습니다.
사랑의 '사다리'를 오르다: 에로스에서 아름다움의 이데아로
플라톤에게 '에로스(Eros)'는 단순히 육체적인 욕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에로스는 '결핍'에서 오는 강렬한 '끌림'이자 '추구'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이 에로스가 바로 플라톤이 말하는 '사랑의 사다리'를 오르는 첫걸음이죠. 이 사다리는 육체적인 아름다움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영혼을 상승시킵니다.
사랑의 사다리 6단계
- 아름다운 한 육체: 처음에는 특정인의 아름다운 육체에 끌립니다.
- 모든 아름다운 육체: 한 육체에 갇히지 않고, 모든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아름다움의 한 부분임을 깨닫습니다.
- 아름다운 영혼(마음): 육체적인 아름다움보다 정신적, 도덕적인 아름다움이 더 고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아름다운 제도와 법: 선하고 아름다운 행위가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의 아름다운 제도와 법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 아름다운 지식과 학문: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인 지식과 학문, 진리에 대한 탐구에 몰두합니다.
- 아름다움 그 자체(미의 이데아): 마침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불변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직관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모든 아름다움의 원형이자 진리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처음엔 그 가수의 외모나 목소리에 끌릴 수 있습니다(1단계). 그러다 그 가수가 가진 예술적 재능, 노력, 무대를 통해 보여주는 열정에 감탄합니다(2-3단계). 나아가 그 가수가 속한 음악 산업의 구조나 그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4단계). 결국 우리는 음악이라는 행위, 즉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본질적인 '원리'와 '지식'에 감탄하게 됩니다(5단계).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예술적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죠(6단계). 플라톤에게 사랑은 이런 식으로 우리의 시야를 확장하고, 더 높은 가치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힘입니다.
플라톤의 사랑론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플라톤의 사랑론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SNS에서 외모에 기반한 인기를 쫓거나, 물질적인 성공을 통해 인정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플라톤은 사랑의 본질이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가치를 향한 영혼의 갈망임을 가르쳐줍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하며, 개인적인 관계를 넘어 인류와 사회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아가페(Agape)'는 종종 희생적이고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기독교적 개념으로 이해됩니다. 플라톤의 에로스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향한 사랑은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선 보편적인 진리 추구라는 점에서, 아가페와 유사한 지향점을 갖습니다. 이 둘은 다르지만, 사랑을 통해 자아를 초월하고 보편적인 가치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줍니다.
플라톤의 사랑의 사다리는 단순히 연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몰두하고 열정을 느끼는 과정,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혹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과정 모두 플라톤적 '에로스'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승화시키고, 더 높은 가치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에로스는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다른 철학자들은 사랑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플라톤의 사랑론은 서양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사랑에 대한 유일한 관점은 아닙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또 다른 각도에서 사랑을 탐구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아(Philia)': 플라톤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Philia)'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필리아를 이익, 쾌락, 덕에 기반한 세 가지 종류로 나누며, 특히 덕에 기반한 우정이 가장 완전하고 지속적인 사랑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사랑은 이데아를 향한 영혼의 비상이라기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덕성을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현실적인 관계의 핵심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카리타스(Caritas)': 기독교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에 대한 사랑인 '카리타스'를 최고의 사랑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신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사랑이자, 모든 인간에게 베푸는 보편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플라톤의 에로스가 인간의 영혼이 능동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상향적 움직임이라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카리타스는 신으로부터 오는 하향적이고 무조건적인 은총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입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플라톤의 사랑론은 궁극적으로 지적인 통찰과 연결되기에 차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은 사랑의 시작점을 언제나 '결핍'에서 오는 강렬한 '욕망'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결코 무감각하거나 이성적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끌림에서 시작하여 점차 고귀한 형태로 승화하는 과정은 인간의 뜨거운 감정과 열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궁극적인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직관하는 순간은 지적인 깨달음과 동시에 영혼을 뒤흔드는 경외로운 경험일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파편화되고 감각적인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즉각적인 만족이나 유행에 휩쓸리기 쉽죠. 하지만 플라톤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 깊이 파고들거나, 어떤 진실을 탐구하려 노력할 때, 그것은 결국 '아름다움 그 자체'를 향한 여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더 높은 가치를 탐구하려는 '에로스'적인 열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플라톤에게 사랑은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 인간 영혼이 최고선(最高善)과 최고미(最高美)를 향해 나아가는 근원적인 힘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사다리를 오르며, 개인적인 욕망을 넘어 보편적인 가치와 연결되고, 더욱 풍요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끌림이 단순한 욕망을 넘어 더 큰 아름다움과 진리를 향한 영혼의 비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플라톤의 사랑론을 통해 당신의 삶에서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지금 열정을 쏟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당신을 어떤 아름다움으로 이끌고 있나요? 그 아름다움의 가장 높은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