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7년, 교황청의 엄숙한 심판대 앞에 한 늙은 도미니크회 수사가 섰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당대 최고의 신학자이자 설교가였던 그는, 신성모독과 이단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으로 고발당했습니다. 교황의 칙령은 그의 28개 명제를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그가 말한 '신 체험'은 너무나 급진적이었고, 기존의 교리를 뒤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에크하르트의 주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신, 즉 '창조주 신'을 넘어선, 모든 존재의 근원인 '신성(Godhead)'과의 합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믿음의 영역을 넘어,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한 신비로운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와 함께, 우리 안의 '신성'을 탐험할 수 있을까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성'과의 합일을 위한 길
• 신은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 즉 '영혼의 바탕(Seelengrund)'에서 '탄생'한다.
• 이러한 내면의 체험은 지식이나 교리를 넘어선, 존재론적 변화를 의미하며, 이는 곧 진정한 자유와 평화로 이어진다.
2.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사회적 역할, 소유물, 관계를 넘어선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3.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궁극적인 평화'란 어떤 것일까?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마이스터 에크하르트(Johannes Eckhart, c. 1260 – c. 1328)는 중세 말기, 스콜라 철학과 신비주의가 교차하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는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도미니크회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하는 등 최고의 학자이자 행정가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학문적 깊이와 행정 능력 이면에는, 전통적인 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신 체험'에 대한 강렬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학의 논리적 한계를 넘어, 인간이 신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당시 교회가 '신'을 너무나 외부에 있는, 멀리 떨어진 존재로만 가르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신이 우리 내면 깊숙이, 우리 영혼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자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당시 교회의 권위와 신앙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고, 결국 이단 혐의로 기소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됩니다.
에크하르트는 탁월한 학자였지만, 그의 진정한 열정은 '설교'에 있었습니다. 그는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대중에게 설교하며, 어려운 신학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려 노력했습니다. "신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다" "우리는 신을 버려야만 신을 만날 수 있다"는 그의 역설적인 표현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한편으로는 깊은 영적 갈증을 해소해주기도 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지성과 영성의 끊임없는 탐구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무소유(Abgeschiedenheit)'와 '신성(Gottheit)' 쉽게 이해하기
에크하르트 사상의 핵심은 '무소유(Abgeschiedenheit)'와 '신성(Gottheit)'입니다. 그는 우리가 신과 합일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단순히 물질적인 소유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 감정, 욕망, 그리고 심지어 '신에 대한 우리의 개념'까지도 포함합니다. 그는 "우리가 신을 만나려면, 신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틀을 벗어던질 것을 요구합니다.
1. 무소유(Abgeschiedenheit):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역설
무소유는 '단절' 또는 '분리'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로부터 분리되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에고와 욕망으로부터도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 어떤 개념이나 경험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영혼의 바탕(Seelengrund)'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물이 가득 찬 컵을 비워야만 새로운 물을 담을 수 있듯이, 우리 내면을 완전히 비워야만 진정한 신성이 우리 안에 '탄생'할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당신이 어떤 방에 들어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방에는 가구, 장식품, 그림 등 온갖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이 물건들은 당신이 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을 형성합니다. 에크하르트의 '무소유'는 이 모든 물건을 방 밖으로 치우는 것과 같습니다. 방이 텅 비고 나면, 그 방 자체의 본질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텅 빈 공간'이야말로 어떤 물건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본질적인 존재의 바탕과 같습니다. 우리 내면의 모든 것을 비워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즉 '영혼의 바탕'에 이르러 신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신성(Gottheit): 개념을 넘어선 신의 근원
에크하르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 즉 창조자이자 심판자인 인격적인 신을 넘어선 '신성(Gottheit)'에 주목했습니다. 신성은 어떤 속성이나 개념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근원이자 무한한 공백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강물'을 이야기할 때, 강물의 흐름이나 물고기, 바위 등 특정 형태를 넘어선 '물' 자체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소유를 통해 비워진 영혼의 바탕에서, 이 '신성'이 마치 아기가 태어나듯 '탄생'한다고 에크하르트는 보았습니다. 이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 깨어나는 신비로운 체험입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중세 신비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고, 배우고, 소비하라고 강요받습니다. '나'라는 존재 역시 소셜 미디어 프로필, 직업, 소유물 등으로 정의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적인 것들에 집착할수록 우리는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고, 공허함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에크하르트의 '무소유'는 이 시대에 필요한 '디지털 디톡스'나 '미니멀리즘'을 넘어선, 영혼의 궁극적인 비움을 제안합니다. 물질적인 것을 넘어 우리의 생각과 감정, 심지어 '자아'라고 믿는 것들까지 비워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종교나 신념 체계를 넘어,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합니다.
1. 정보와 자극의 무소유: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나'와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명상이나 고요한 산책은 좋은 방법입니다.
2. 개념의 무소유: 고정관념이나 편견,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옳다/그르다'는 판단을 잠시 유보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자아의 무소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때, 나의 직업, 성과, 관계가 아닌 '텅 빈 나'의 본질에 집중해보세요. 그 텅 빈 공간에서 당신의 진정한 '본질'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그 자체로 독특하지만, 그의 사유는 이후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독일 관념론의 창시자인 헤겔은 에크하르트의 영향을 받아 신과 인간, 주체와 객체의 변증법적 합일을 논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신이 나를 필요로 하듯이 나도 신을 필요로 한다"는 역설은, 헤겔의 정신(Geist) 개념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과정과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또한 에크하르트의 '무소유' 개념은 불교의 '공(空)' 사상이나 도교의 '무위(無爲)'와도 놀랍도록 유사한 지점을 가집니다. 특정 종교의 틀을 넘어선 '비움'과 '근원과의 합일'이라는 보편적인 영적 탐구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신성'은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와는 다릅니다. 이들은 개념적으로 존재하거나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였지만, 에크하르트의 신성은 우리 내면에서 '경험'되는 궁극적인 바탕입니다. 오히려 훗날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근원이나, 하이데거가 '존재(Sein)'를 물었던 것과 유사하게, 에크하르트는 모든 개념과 속성을 넘어선 '존재함 그 자체'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신을 '주어'가 아닌 '동사'로 이해하려 했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A: 아닙니다. 에크하르트는 비움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보았습니다. 외부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신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행동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롭고 윤리적인 행동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활동적인 삶(vita activa)과 관조적인 삶(vita contemplativa)을 대립시키지 않고, 깊은 관조에서 우러나오는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덕이라고 보았습니다.
A: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범신론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그는 엄밀히 말해 범신론자가 아닙니다. 범신론이 '신이 곧 모든 자연이다'라고 말한다면, 에크하르트는 신성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지만, 동시에 모든 존재를 초월해 있다고 보았습니다. '초월적 내재성(transcendent immanence)'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는 신이 창조된 세계 안에만 갇혀 있다고 보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를 넘어서는 '신성'과 영혼의 합일을 강조했습니다.
A: 네, 여전히 유효합니다. 에크하르트의 사유는 과학이 다루는 객관적인 사실을 넘어선 '주관적 경험'과 '의식'의 본질에 대한 탐구입니다. 특히 현대 뇌과학이나 심리학에서 '자아'의 본질이나 '의식'의 깊이를 탐구하는 방식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므로, 과학적 세계관과도 충돌하지 않고 영적 성찰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영적 여정을 제안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외부의 신을 찾으려 하지 말고,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침잠하여 '신성'과 만날 것을 권유합니다. 이 과정은 소유물을 버리고, 개념을 비우고, 자아마저 내려놓는 고통스러운 '무소유'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모든 것을 초월한 평화와 자유, 그리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비워내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요? 이 질문을 통해, 당신만의 '신성'을 탐험하는 여정을 시작해보세요.
당신의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당신을 둘러싼 모든 소음과 욕망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보세요. 그 고요함 속에서 당신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어떤 '울림'이 있는지 귀 기울여보세요. 당신은 그곳에서 어떤 '신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종교적 맥락을 가지지만, 그의 통찰은 종교를 넘어선 보편적인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에 답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