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상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아무도 보지 않는 방 안의 가구가, 문을 닫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고요? 우리가 눈을 감으면 세상도 함께 사라진다고요? 너무나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18세기 한 철학자는 이 급진적인 주장을 진지하게 펼쳤습니다. 바로 아일랜드의 주교이자 철학자인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입니다. 그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세상을 뒤흔들었죠.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
버클리 관념론: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 우리가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것을 통해서만 사물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 우리가 지각하지 않을 때도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신'이 모든 것을 항상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속의 가상현실은, 내가 전원을 끄면 '진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3. 다른 사람과 내가 같은 것을 보더라도, 우리의 '지각'은 과연 완전히 동일할까?
조지 버클리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17세기와 18세기는 뉴턴의 물리학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물질의 법칙, 기계론적 우주관이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신의 존재나 영혼의 역할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질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유물론이 힘을 얻고 있었죠.
젊은 버클리는 이런 시대 흐름에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는 당시 철학자들이 '물질'이라는 실체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존 로크 같은 경험론자들은 물질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오감을 통해 그것을 '표상'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버클리는 여기서 딜레마를 발견합니다. 만약 우리가 물질 자체를 직접 경험할 수 없고, 오직 우리의 '관념'만을 경험한다면, 과연 물질이라는 것이 정말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버클리는 당시의 유물론적 세계관이 무신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의 존재를 굳게 믿었던 주교로서, 그는 물질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신의 직접적인 개입과 역할을 옹호하려 했습니다. 만약 세상이 물질이 아니라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리고 이 관념들이 우리의 마음에 떠오른다면, 이 모든 것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정신'이어야 한다는 논리였죠. 그리고 그 궁극의 정신이 바로 '신'이라고 보았습니다.
버클리는 1685년 아일랜드 킬케니에서 태어나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습니다. 25세에 이미 그의 대표작인 『인간 지식의 원리론』을 출간하며 당대 최고의 논쟁적 사상가로 떠올랐죠. 그는 물질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이 정신적 실체(관념)로 이루어져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 주장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비상식적으로 들렸지만, 그는 평생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후에 그는 아일랜드의 클로인 주교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데 헌신하며 삶의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
버클리가 말하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명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 예를 들어 사과의 붉은색, 단맛, 둥근 모양, 딱딱한 느낌 등은 모두 우리의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관념(idea)'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관념들을 빼면, 우리가 '사과'라고 부를 만한 물질적인 '실체'는 남지 않는다는 것이죠.
물질은 없다, 오직 관념뿐!
버클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물체(예: 테이블)를 본다고 할 때, 우리는 사실 테이블의 색깔, 모양, 단단함 등의 '감각적 성질'만을 경험합니다. 이 감각적 성질들이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관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관념들 뒤에 우리의 지각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실체'가 있다는 것을 믿을 어떤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테이블의 색깔, 모양, 단단함 등을 다 빼버리고 나면, 그 테이블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죠.
당신이 방에서 사과를 보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버클리에 따르면, 당신이 보는 '사과'는 붉은색, 둥근 모양, 달콤한 향기, 부드러운 촉감 등의 '관념'들의 묶음입니다. 이 관념들을 빼고 나면, '물질적인 사과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눈을 감거나 방을 나간다면, 그 사과에 대한 당신의 '지각'이 중단되므로, 사과도 당신에게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사과는 사라지지 않죠? 버클리는 이때 '신(God)'이 모든 것을 항상 지각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물과 관념들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신은 모든 관념들의 궁극적인 원천이자 영원한 지각자로서 세계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셈입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버클리의 관념론은 300년 전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특히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시금 직면하고 있습니다.
- 가상현실(VR)과 버클리: VR 헤드셋을 쓰면 우리는 완벽하게 몰입하는 '가상 세계'를 경험합니다. 이 세계는 오직 우리가 지각할 때만 존재하죠. 헤드셋을 벗으면 그 세계는 사라집니다(적어도 우리에게는). 버클리의 관념론은 마치 이 가상 세계가 우리의 지각 속에서만 '진짜'가 되는 것처럼, 현실 세계도 우리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 주관적 경험의 중요성: 같은 사건을 겪어도 사람마다 기억하고 느끼는 방식이 다릅니다. 버클리는 이처럼 개인의 '지각'이 현실을 구성하는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타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 현대 과학과의 대화: 양자역학의 '관측자 효과(Observer Effect)'는 미시 세계에서 관측 행위 자체가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물론 버클리의 철학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의식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현대 과학의 질문과 버클리의 사유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합니다.
버클리의 관념론은 우리에게 일상에서 경험하는 '현실'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섬세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외부 세계가 사실은 우리의 마음과 지각에 의해 구성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에게 겸손함과 동시에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합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고,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버클리의 주장은 당대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물질의 존재를 부정한 첫 번째 철학자 중 한 명이었고, 그의 사상은 서양 철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존 로크 (경험론): 로크는 버클리의 스승 격인 경험론자로, 우리가 사물의 '일차 성질(크기, 모양, 운동 등)'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이차 성질(색, 맛, 소리 등)'은 주관적이라고 보았습니다. 버클리는 이 주장을 뒤집어 "모든 성질은 지각되는 것일 뿐이며, 외부 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반박합니다. 로크라면 "테이블의 크기는 내가 보든 안 보든 그대로 아닌가?"라고 물었을 겁니다.
데이비드 흄 (회의론): 흄은 버클리의 관념론을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흄은 버클리가 물질은 부정했지만, '정신(mind)'이나 '신'은 존재한다고 믿은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흄은 우리에게 '정신'이나 '신'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이 역시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 결론에 도달합니다. 흄이라면 "지각되지 않는 신은 어떻게 존재한다는 말인가?"라고 질문했을 것입니다.
임마누엘 칸트 (비판철학): 칸트는 버클리의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우리의 '감각 기관'과 '선험적 인식 형식(시간, 공간 등)'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세계는 우리에게 '현상(phenomenon)'으로 나타날 뿐,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물자체(noumenon)'는 알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칸트라면 "지각이 중요한 건 맞지만, 지각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틀은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했을 것입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버클리에 따르면 꿈이나 환각도 우리의 마음속에 지각되는 '관념'입니다. 따라서 존재합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관념들과 다른 점은, 현실 세계의 관념들은 '신'에 의해 질서 정연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다른 사람들과 공유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꿈이나 환각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이며, 신이 아닌 개인의 정신에 의해 생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아론은 '오직 나 자신과 나의 의식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상입니다. 버클리의 철학은 모든 것이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유아론과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클리는 중요한 차이점을 둡니다. 바로 '신'의 존재입니다. 신이 모든 관념을 항상 지각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보지 않아도 세계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와 같은 세계를 지각합니다. 즉, 버클리는 나의 지각을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질서 있는 '현실'의 근거를 신에게서 찾습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조지 버클리의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명제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던 '현실'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물질이 실제로 존재하든 안 하든,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은 오직 '지각'을 통해서라는 그의 통찰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버클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경이로운 '관념'의 향연인지를요. 우리가 세상을 '본다'는 행위 자체가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기적일지도 모른다고요. 오늘 하루,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사실은 당신의 지각 속에만 존재하는 아름다운 '관념'일 수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상상 속에서 당신은 버클리와 함께 새로운 사유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세상이 우리의 지각 속에만 존재한다면,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