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광장. 한 남자가 마부에게 채찍질당하는 말을 발견합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울부짖으며 말의 목을 껴안고 쓰러집니다. 병사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간 그는 이후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다 끝내 세상을 떠납니다. 이 남자는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이성을 탐구하던 철학자가 왜 하찮은 말 한 마리 앞에서 무너져 내렸을까요?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19세기 말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이성 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웅장했던 근대 철학의 건축물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새로운 시대로의 격렬한 전환을 알리는 서곡이었습니다.
19세기 말 철학, 거대한 전환의 핵심
• 삶, 의지, 실존 등 비이성적 요소의 부상
• 절대적 진리 대신 다원성과 주관성 강조
2. 불확실성 속에서 나만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3. 이성과 감성 중 무엇이 더 '나다운' 삶을 이끌까?
니체와 키르케고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19세기 말, 세상은 격변하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삶의 방식을 바꾸고, 과학은 종교의 자리를 위협했으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흔들었습니다. 칸트와 헤겔이 쌓아 올린 이성 중심의 거대한 철학 체계는 이러한 혼돈 속에서 인간의 고통과 불안을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니체와 키르케고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성'이라는 절대 군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병약했던 니체는 평생 고통과 고독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당시 유럽 사회의 도덕과 종교적 가치(특히 기독교적 가치)가 인간의 생명력과 '삶에의 의지'를 억압한다고 보았습니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선언은 단순히 무신론을 넘어, 서구 문명을 지탱하던 절대적 진리, 즉 '이성'의 자리가 비어 버렸음을 고합니다. 광장에서 말이 맞는 광경은 그가 평생 대면했던 삶의 부조리, 고통, 그리고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의지'의 격렬한 분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요?
이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일찍이 인간의 '실존'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헤겔의 거대한 이성 체계가 개별 인간의 고독, 절망, 불안을 간과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키르케고르에게 진리는 객관적 체계가 아니라, 주관적인 선택과 믿음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이후 20세기 실존주의의 씨앗이 됩니다.
'삶에의 의지'와 '실존', 쉽게 이해하기
근대에서 현대로의 전환은 철학의 초점이 '무엇을 아는가(인식론)'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실존론, 윤리)'로 옮겨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성적 사유가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삶에의 의지'와 '실존'이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 (Will to Power)'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단순히 권력욕이나 지배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생성하고 극복하려는 충동'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삶을 긍정하려는 역동적인 힘을 말합니다. 니체는 기존의 도덕이 이 힘을 억압하며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어려운 운동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거나,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때 느끼는 강렬한 추진력이 바로 '힘에의 의지'와 연결됩니다. 단순히 외부에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으로 자신을 확장하고 완성하려는 충동인 것이죠.
키르케고르의 '실존 (Existence)'과 '절망 (Despair)'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단순히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실존적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객관적 진리나 보편적 도덕이 아니라, 각 개인이 홀로 고뇌하며 내리는 주관적 선택이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피할 수 없는 '불안'과 '절망'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절망은 때로는 신앙으로, 때로는 주체적 선택으로 극복될 수 있는 중요한 실존적 경험입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19세기 말 철학적 전환은 20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거대 서사의 종말'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나 보편적인 가치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불안을 안겨줍니다. SNS에서 타인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의미를 상실하거나, 불안한 미래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키르케고르의 '절망'과 니체의 '가치 전도'의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의미 부여하기: 더 이상 주어진 의미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힘에의 의지'로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창조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자신만의 가치를 세우고, 작은 성취를 통해 스스로를 극복하는 경험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불안과 마주하기: 키르케고르처럼, 현대인의 불안과 공허함을 회피하기보다 직시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합니다. 때로는 불편한 질문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 인정하기: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타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19세기 말의 전환은 단순히 니체와 키르케고르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서구 사상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전과 이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칸트 vs. 니체/키르케고르: 칸트는 '이성'을 통해 보편적 도덕 법칙을 세우려 했고, 인간의 자율성을 이성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니체와 키르케고르는 이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역동적인 삶과 실존적 고뇌를 간과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성은 삶의 한 부분일 뿐,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죠.
헤겔 vs. 키르케고르: 헤겔은 역사를 '절대정신'이 이성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합리적 체계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죠.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거대한 체계 속에서 개별 인간의 고독하고 주관적인 '실존'이 소외된다고 반발했습니다. 인간은 단지 역사의 부품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절대적 진리나 보편적 이성에 대한 회의, 다양한 가치와 관점의 인정, 그리고 '거대 서사(종교, 국가, 이데올로기 등)'의 해체 현상은 19세기 말 니체 등의 사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다원주의적 특징과 깊이 연관됩니다.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사상이 때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나 허무주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성과 의지, 주관과 객관의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이성 숭배만큼이나 무비판적인 감정의 추구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철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니체는 기존 도덕을 '가치 전도'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새로운 도덕의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편적인 합의, 대화, 그리고 개인의 책임감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도덕적 지평을 모색해야 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니체가 광장에서 말의 목을 껴안았던 순간은 단순히 한 철학자의 비극적 몰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근대 철학의 웅장한 막이 내리고, 인간의 이성 너머에 존재하는 '삶'과 '의지', 그리고 고독한 '실존'에 주목하는 새로운 철학의 장이 열리는 순간을 알리는 서곡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전환점의 영향 아래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넘어서는 '힘에의 의지'를 발현할 기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니체의 외침과 키르케고르의 고뇌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자유로운 너의 삶을 살아라,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책임을 져라."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진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진리'를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일까요?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