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99년 여름, 아테네의 작은 감옥 안. 차가운 독배가 소크라테스 앞에 놓였습니다. 제자 크리톤은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선생님, 도망치세요! 저희가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스승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평생 아테네를 떠나지 않았던 이 노철학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법정은 그에게 '불경죄'와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를 물어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왜, 죽음 앞에서도 불의한 판결에 순응했던 걸까요? 흔히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요약되곤 하는 그의 선택은, 과연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이다"의 진짜 의미
• 그는 시민으로서 국가와 맺은 '사회 계약'과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그의 죽음은 법의 '내용'보다 법이 작동하는 '절차'와 '체계'를 존중한 철학적 실천이었습니다.
2. 개인의 양심과 공동체의 질서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가?
3. 진정한 정의는 '법'이라는 형식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아테네 시민으로 살며,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며 성찰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권위와 전통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거부했고, 끊임없는 질문으로 아테네 사회의 위선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그의 태도는 당시 기득권층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결국 그는 재판에 회부됩니다. 비록 그 판결이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했고 부당한 측면이 있었다 하더라도,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아테네 시민으로서 그 법정에 섰고, 법적인 절차를 통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도망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테네의 법을 어기는 것을 거부했다고 플라톤의 대화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법을 어기고 도망치는 것은 마치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과 같으며, 자신이 평생 아테네의 법 아래에서 누린 혜택을 부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법을 어기는 순간, 자신이 평생 설파했던 '진리'와 '원칙'이 무너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그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행위였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쉽게 이해하기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의 이 말을 "어떤 법이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이는 소크라테스의 진정한 의도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법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 '법이 제정되고 집행되는 절차'와 그 법이 지탱하는 '사회 질서'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1. 사회 계약(Social Contract)의 정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이라면 누구나 암묵적으로 아테네 국가와 '사회 계약'을 맺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시민은 국가의 보호와 법의 혜택을 누리는 대가로, 그 법을 지키고 국가의 결정에 복종해야 할 의무를 가집니다. 그가 재판 결과에 승복한 것은, 이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도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 법치주의(Rule of Law)의 수호
소크라테스는 만약 모든 개인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법을 어기기 시작한다면, 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법의 지배가 무너지면, 정의와 질서 자체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법'이라는 형식이 정의를 담보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는 판결의 '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판결이 법적 '절차'를 통해 내려진 이상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축구 경기를 상상해 보세요. 아무리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심판이라도, 그 심판의 판정을 선수 개개인이 '이건 악법이다!'라며 무시하고 경기를 제멋대로 한다면, 그 경기는 더 이상 축구가 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라는 '국가'를 지탱하는 '법'을, 축구 경기의 '규칙'과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규칙이 없으면 경기도 없고, 법이 없으면 국가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소크라테스의 사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개인의 양심과 사회의 법, 그리고 정의 사이의 긴장은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딜레마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통해 '무엇이 진정한 시민의 의무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부당한 법에 대한 '시민 불복종'이 중요한 저항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간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같은 이들은 부당한 법에 저항하며 비폭력적으로 법을 어겼고, 그 대가로 처벌을 감수했습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법의 절차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직접 법을 어기기보다, 법의 절차적 정당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죽음을 통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방식 사이에서, 언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후대의 많은 철학자들에게 논쟁의 씨앗을 제공했습니다. '악법'의 정의와 그에 대한 시민의 태도는 철학자마다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자연법 사상가들은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법은 진정한 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법은 따를 의무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토마스 홉스나 장 자크 루소와 같은 사회 계약론자들은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개인의 권리 일부를 양도하고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크라테스의 입장과 유사한 맥락을 가집니다. 현대에는 '법실증주의'와 '법윤리주의'가 법의 정의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고민은 이런 다양한 법철학적 논의의 출발점이 됩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소크라테스는 법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법의 내용 자체가 부당할 때 '악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됩니다. 법이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특정 집단을 억압한다면, 과연 그것을 '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악법'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처럼 법의 절차를 존중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해답일까요? 아니면 마틴 루터 킹 주니어처럼 비폭력적으로 법을 어기며 사회 변화를 이끄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요? 개인의 양심이 법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행동을 결정해야 할까요?
함께 생각해보며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는 단순한 복종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철학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준 '원칙에 대한 헌신'이자, '사회 질서의 중요성'을 역설한 숭고한 사유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아테네 시민들에게 '법치주의'와 '시민의 의무'에 대한 가장 강렬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의 고민을 통해, 우리 시대의 법과 정의, 그리고 개인의 양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법이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법의 불완전함과 마주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