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철학 블로그"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들을 탐구하고,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깊이 있는 통찰을 공유합니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여,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비체나의 형이상학: 존재와 본질의 구분

10세기 말, 동양의 한 복잡한 도시에서 한 젊은이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하듯 책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어린 나이에 의학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마음은 인간의 질병을 넘어 존재의 근원, 사물의 본질이라는 더욱 깊은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죠. 그의 이름은 아비체나, 서양에서는 '의학의 왕자'로 불리지만, 철학적으로는 '존재'와 '본질'의 비밀을 파헤친 위대한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질문했습니다. 우리가 눈앞에 보는 저 컵은 '무엇'인가? 그리고 저 컵은 '존재하는가'? 이 두 질문이 왜 다른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의 삶을 둘러싼 모든 질문의 시작은 바로 이 사소한 구분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아비체나의 형이상학: 존재와 본질의 핵심 통찰

🎯 핵심 메시지
• 사물은 '그것이 무엇인지(본질)'와 '그것이 존재하는지(존재)'로 구분된다.
• 본질은 존재 자체를 포함하지 않으며, 존재는 본질에 '더해지는' 우연적인 속성이다.
• 이 구분을 통해 아비체나는 우주의 필연성과 신의 존재를 논증하려 했다.
🤔 스스로 질문해보기
1. 당신이 꿈꾸는 완벽한 집은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그 집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2.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본질'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3. 나의 '본질'은 무엇이며, 나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아비체나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비체나(이븐 시나, 980-1037)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10대 때 이미 의학과 법학, 수학, 천문학을 섭렵했습니다. 18세에 그는 이미 스스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40번 읽고 외울 정도로 이해했다"고 말할 정도였죠. 하지만 그의 삶은 단순한 학자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여러 통치자를 섬기며 망명과 투옥을 반복했고, 때로는 감옥에서도 책을 쓰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그를 지탱한 것은 바로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였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던 '존재'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과연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은 그를 중세 이슬람 철학을 넘어 서양 스콜라 철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존재론'의 대가로 만들었습니다.

🎭 아비체나의 삶

아비체나는 페르시아 북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0세 이전에 꾸란을 암기하고 여러 학문을 마스터했습니다. 16세에는 이미 의학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했고, 18세에는 왕의 주치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끊임없는 학문적 탐구와 함께 정치적 격변, 투옥, 그리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마차 위에서든 감옥에서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글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삶 속에서 그는 사물의 근본 원리, 즉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존재'와 '본질' 쉽게 이해하기

아비체나는 모든 사물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두 가지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본질(ماهية, quiddity/essence)'과 '존재(وجود, existence)'입니다.

본질 (Essence): 그것이 '무엇'인가?

본질은 어떤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속성들의 총체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본질은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정의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삼각형의 본질은 '세 개의 변을 가진 도형'입니다. 이 본질은 그것이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정의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상상 속의 유니콘이 '뿔 달린 말'이라는 본질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지만, 유니콘이 실제로 존재한다고는 말할 수 없죠.

존재 (Existence): 그것이 '있다'는 것

존재는 어떤 것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비체나에게 존재는 본질에 '더해지는' 우연적인 속성(accident)입니다. 즉, 어떤 것의 본질 자체에 그 존재가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본질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해서 모든 이성적인 동물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본질은 '김철수'이지만, '김철수'라는 본질이 반드시 존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죽듯이, 그 존재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죠.

💭 이해하기 쉬운 예시

당신이 건축가라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머릿속으로 '완벽한 집'을 설계합니다. 이 집은 방이 몇 개고, 어떤 재료로 지어졌으며,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집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이 집이 실제로 땅 위에 지어져 '존재'하기 전까지는, 그것은 그저 하나의 '개념'일 뿐입니다. 존재는 본질에 '더해지는' 어떤 실현의 힘과 같습니다. 당신이 설계한 집이 돈과 시간, 노동력을 통해 현실화될 때 비로소 그 집은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와 본질의 구분은 특히 '우연적 존재'와 '필연적 존재'를 구분하는 아비체나의 논증에서 빛을 발합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우연적 존재)은 본질은 있지만, 그 본질 자체로는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다른 것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이 존재의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본질 자체가 존재인 어떤 존재에 다다르게 됩니다. 아비체나는 이 존재를 '필연적 존재', 즉 신(神)이라고 보았습니다. 신은 본질과 존재가 분리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죠.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아비체나의 존재와 본질 구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가상현실, 인공지능, 그리고 디지털 세상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 우리 삶 속에서
  • 디지털 존재와 현실 존재: 게임 속 아바타나 가상현실의 물건들은 어떤 '본질'을 가질까요? 그리고 그것들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비체나의 관점에서 보면, 그 본질은 프로그래밍 코드에 있지만, 그 존재는 특정한 환경(게임 서버, 디스플레이)에 의존하는 '우연적 존재'입니다.
  • 개인의 정체성: 당신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이름, 직업, 성격, 기억? 그리고 이 본질과 '내가 지금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연결될까요? 극단적인 기억 상실이나 자아의 변화를 겪었을 때, 나의 본질은 변하더라도 나의 존재는 계속될까요?
  • 윤리적 딜레마: 인공지능 로봇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그 로봇에게 '본질적인 인간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 방식은 인간의 존재와 어떻게 다를까요?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비체나의 존재와 본질 구분은 중세 철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서양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그의 개념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학적, 철학적 논증을 발전시켰습니다.

💬 철학자들의 대화

아리스토텔레스: 아비체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존재'의 문제를 더욱 독립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존재는 '실체'의 한 측면이었던 반면, 아비체나는 존재를 본질에 '더해지는' 것으로 보며 독자적인 논의의 장을 열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아퀴나스는 아비체나의 존재-본질 구분을 받아들여 자신의 존재론과 신의 존재 증명에 활용했습니다. 그는 아비체나와 마찬가지로 모든 유한한 존재(피조물)는 본질과 존재가 구분되며, 이들의 존재는 다른 것에 의해 주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본질 자체가 존재인 신에게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아퀴나스는 존재를 본질에 부가되는 '우연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본질을 실현시키는 '궁극적 행위(actus essendi)'로 보며 아비체나보다 존재의 능동성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실존주의자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하며, 아비체나의 전통적인 관점과는 대척점에 섰습니다. 그들에게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정의,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지며,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간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존재가 본질보다 선행하거나, 본질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입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본질'을 나타낼까요, 아니면 '존재'를 나타낼까요?

대부분의 명사나 개념어는 사물의 '본질'을 지칭합니다. 하지만 '있다', '존재한다'와 같은 동사는 '존재'의 여부를 나타내죠. 언어가 존재를 얼마나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순수 이성만으로 본질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아비체나는 순수 이성을 통해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경험론자들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만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성적 직관과 경험적 관찰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비체나의 틀로 보면, 가상 세계의 대상들은 본질(코드, 그래픽 등)을 가지지만, 그 존재는 우리의 의식이나 컴퓨팅 시스템에 의존하는 '우연적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우연성'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존재가 우리의 실제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아비체나의 '존재'와 '본질' 구분은 단순히 철학적 유희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근본적인 틀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동시에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눈앞의 사물, 저 먼 우주의 별, 심지어 우리 자신의 존재까지도, 아비체나의 렌즈를 통해 보면 새로운 의미와 질문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은 때로는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철학의 매력입니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우리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계속되는 사유

오늘 하루 당신이 만나는 사물들(책상, 스마트폰,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 작은 질문들이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생각해볼 점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