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중반,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 거대한 체구에 말이 없고 행동이 굼뜨다고 하여 '덤불 소(Dumb Ox)'라 불리던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비웃음과 가족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고요한 사색 속에서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 즉 '무엇이 진정으로 옳은가?'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그가 제시한 답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자연법(自然法)'이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론: 영원한 정의를 찾아서
• 자연법의 제1원칙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이며, 이는 생명 보존, 종족 번식, 진리 추구, 사회생활 등 인간의 자연적 경향성에서 도출됩니다.
• 이 자연법은 인간이 만든 실정법(인정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며, 오늘날 보편적 인권과 윤리적 기초를 제공합니다.
2. 만약 세상의 모든 법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3.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옳음'이란 과연 존재할까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13세기는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서구에 재유입되면서, 오랜 기간 신앙 중심이었던 유럽의 지성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이성'이 '신앙'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고, 인간의 법이 어떻게 신의 섭리 안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갈망했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 사유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모순되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수도사의 길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이를 맹렬히 반대하며, 그를 성에 감금하고 여성까지 들여보내 유혹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굳건한 신념으로 학문의 길을 걸었습니다. '덤불 소'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스승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언젠가 이 소가 울부짖으면, 그 소리는 온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 예언했으며, 실제로 그의 사상은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자연법(自然法) 쉽게 이해하기
아퀴나스는 우주 전체를 다스리는 신의 이성을 '영원법(Eternal Law)'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원법이 이성적 존재인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 바로 '자연법'입니다. 즉, 인간은 이성을 통해 신의 섭리(영원법)의 일부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 파악된 원리들이 자연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자연법은 인간의 본성, 즉 자연적 경향성에 따라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를 알려주는 보편적 도덕률입니다.
자연법의 제1원칙: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
이 원칙은 모든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지향점입니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자연적 경향성을 세 가지로 보았습니다:
- 생명 보존의 경향성: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보존하려는 본능을 가집니다. 따라서 자살이나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자연법에 어긋납니다.
- 종족 번식 및 양육의 경향성: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을 가집니다. 따라서 결혼과 출산, 자녀 양육은 자연법에 부합합니다.
- 이성적 존재로서의 경향성: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진리를 추구하고, 신을 알고자 하며,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려는 경향을 가집니다. 따라서 무지, 거짓말, 사회적 불화는 자연법에 어긋납니다.
이러한 경향성들은 인간 이성이 발견할 수 있는 '선'의 내용이며,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도덕 규칙과 인간이 만든 실정법(인정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아퀴나스는 주장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법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합니다. 이는 단순히 국가가 만든 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선하다'는 자연적 경향성을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과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자연 법칙'처럼,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도덕적 명령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자연법칙'인 셈이죠.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은 단순히 중세 시대의 유산이 아닙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의 개념,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생명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의 뿌리에는 자연법적 사유가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법이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불합리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과연 이 법이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실정법 위에 존재하는 보편적 정의의 기준, 즉 자연법적 사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성찰입니다.
또한, 환경 문제나 생명 윤리 같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은 '인간의 자연적 경향성'과 '선'이라는 보편적 기준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사유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이때 단순히 '법에 명시되어 있으니까' 또는 '다른 사람들이 다 하니까'라는 이유를 넘어, '이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선한 행동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 내면에 보편적 도덕률을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는 자기 성찰을 통해 더 나은 개인과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퀴나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 특히 스토아학파는 이미 이성적인 자연 질서와 그에 순응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연법 사상의 원류를 형성했습니다. 로마의 법률가들도 실정법 위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법의 개념을 논했습니다.
하지만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통해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자연법을 가장 체계적으로 확립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입니다. 반면, 근대에 들어서면서 홉스나 루소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자연법을 신이 아닌 '인간 이성' 그 자체에 기반하여 해석하며, 국가와 법의 정당성을 개인들의 합의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현대의 법실증주의자들은 법의 유효성을 실정법의 형식과 절차에서 찾으며 자연법의 존재를 회의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부당한 법에 대한 저항권'을 논할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연법적 사유에 기대게 됩니다.
스토아 철학자: "우주의 이성적 질서에 따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오. 인간은 이성으로 그 질서를 파악할 수 있소."
토마스 아퀴나스: "맞소. 그 우주의 질서가 바로 신의 영원법이고, 우리가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그 일부가 바로 자연법이오. 인간의 법은 이 자연법에 따라야만 정당성을 갖소."
존 로크 (근대 자연법):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자연권을 가지고 있소. 이 자연권은 어떤 법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 권리요."
한스 켈젠 (법실증주의): "법의 유효성은 그 법이 만들어진 절차와 체계에 달려있지, 어떤 추상적인 '정의'에 있는 것이 아니오."
이렇듯 자연법은 시대를 거쳐 끊임없이 질문되고 재해석되며, 인류의 법과 도덕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 왔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아퀴나스는 자연법의 제1원칙('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은 절대 불변하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규범들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하지 말라'는 보편적 원칙이지만, 어떤 상황에서 타인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도둑질이 아닌 (예: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 예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이어집니다. 이는 자연법의 보편성과 현실 적용의 유연성 사이의 끊임없는 고민을 보여줍니다.
아퀴나스는 자연법에 어긋나는 인간의 법은 '법의 왜곡'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부당한 법에 대한 저항권을 직접적으로 논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사상에서는 '불의한 법은 지킬 의무가 없다'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과 시민 불복종 운동의 철학적 근거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덤불 소' 아퀴나스의 사유는 중세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힌 한 줄기 지혜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만든 법이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으며, 영원한 정의와 연결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자연법론은 우리가 끊임없이 '무엇이 옳은가'를 묻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답을 찾기 어렵겠지만, 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이끌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정의롭게 만드는 힘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법적,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이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사유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된 '선'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까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