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에도 해가 뜰 것이라고 확신하시나요? 물론이죠.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으니까요.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대면 데일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뜨거움'과 '데이는 것' 사이에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항상 그래왔으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미래를 확신할 수 있을까요? '원인과 결과'는 정말 객관적인 사실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일까요? 이 질문 앞에서 18세기 스코틀랜드의 한 철학자는 우리가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흄입니다.
데이비드 흄: 이성의 한계와 인과관계의 문제
• '원인과 결과'는 실제 세계의 필연적 연결이 아니라, 경험의 반복을 통해 우리가 형성한 '습관' 또는 '기대'일 뿐이다.
•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회의주의적 자세가 중요하다.
2. 어떤 일이 다른 일의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그 관계를 직접 '관찰'할 수 있었나요?
3.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흄의 철학은 어떻게 다루라고 조언할까요?
데이비드 흄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온화한 성품과 뛰어난 지성으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존경받았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그는 스스로를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을 수립하려 했던 '경험론자'로 보았습니다. 당시 유럽의 지성계를 지배하던 합리론(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은 인간의 이성만으로 세계의 모든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죠.
하지만 흄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성을 맹신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모든 지식의 근원을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정말 우리의 오감으로 '경험'된 것인지, 아니면 이성이 멋대로 만들어낸 '관념'인지 철저히 파고들었죠. 그리고 이 탐구의 끝에서 그는 우리에게 가장 당연하게 여겨지는 '인과관계'마저도 이성의 산물이 아닌, 단순한 '습관'일 뿐이라는 파격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흄은 평생 학문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가이자 경제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회의주의적 철학은 당대에는 큰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늘 침착하고 유머러스한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되, 삶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과관계' 쉽게 이해하기
흄의 철학은 우리의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지각을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으로 나누었습니다. 인상은 우리가 오감으로 직접 경험하는 강렬하고 생생한 지각(예: 사과를 보는 것)이며, 관념은 인상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희미한 생각(예: 사과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진짜 논란은 '인과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뜨거운 물'이 '증발'을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A가 B를 발생시킨다'는 믿음은 우리 일상생활의 근간을 이룹니다. 그런데 흄은 이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자고 제안합니다.
우리는 '필연적 연결'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원인과 결과'라고 부르는 현상을 관찰해보세요. 예를 들어, 당구공 A가 당구공 B를 쳐서 B가 움직이는 장면을 상상해봅시다. 흄은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단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뿐이라고 말합니다.
- A가 B보다 먼저 움직였다 (시간적 선행).
- A와 B가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었다 (공간적 근접성).
-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항상적 연결).
하지만 흄은 우리가 당구공 A가 B를 '반드시' 움직이게 하는 '필연적 연결(necessary connection)'을 직접 관찰한 적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단지 A의 움직임 다음에 B의 움직임이 '항상' 따라왔다는 '반복적인 경험'만 했을 뿐입니다. 이 반복적인 경험이 우리 마음속에 '습관'을 만들고, 이 습관 때문에 우리는 A가 B의 '원인'이라고, 그리고 미래에도 A가 B를 '반드시' 발생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라는 거죠. 우리가 '필연적 연결'을 본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그 연결을 '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동쪽에서 해가 뜹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뜰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흄이라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어떤 필연적인 힘이 내일 해가 뜨도록 강제하는 것을 당신이 직접 본 적이 있습니까? 단지 지금까지 매일 해가 떴다는 경험만 있을 뿐 아닌가요?" 이처럼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귀납 추론'이라고 하는데, 흄은 이 귀납 추론에도 논리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흄의 회의주의는 단순히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확실하다'고 여기는 지식의 기반을 겸손하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성찰의 도구입니다. 그의 통찰은 현대 과학, 인공지능,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믿음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 과학적 지식의 겸손함: 흄 이후 과학은 절대적 진리보다는 '높은 개연성' 또는 '반증 가능성'을 가진 지식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어떤 과학적 사실도 영원불변의 진리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새로운 관찰에 의해 언제든 수정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게 되죠.
- 정보화 시대의 비판적 사고: 가짜 뉴스나 편향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흄의 회의주의는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주장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 주장이 정말 객관적 증거(인상)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반복된 노출로 인해 형성된 '습관적 기대'나 '편향'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 개인의 믿음과 습관: 우리의 개인적인 믿음, 정치적 신념, 혹은 특정 사람에 대한 판단도 종종 흄이 말한 '습관'에 의해 형성되곤 합니다. '이 사람은 항상 이랬어'라는 과거 경험이 미래의 판단을 지배할 때, 그것이 정말 객관적인 것인지, 아니면 나의 기대가 투사된 것인지 성찰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흄의 회의주의는 당시 유럽의 철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합리론자들이 자랑하던 '이성의 힘'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죠.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흄의 철학을 접하고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칸트는 흄의 인과관계 비판에 깊이 공감했지만, 동시에 인과관계가 없다면 과학적 지식이 불가능해진다는 문제점을 인식했습니다. 이에 칸트는 '인과성'이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선험적(a priori) 범주, 즉 인간 이성의 '형식'이라고 주장하며 흄의 회의주의를 극복하려 시도했습니다. 칸트는 흄 덕분에 인간 이성의 한계와 능력을 동시에 탐구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입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흄은 과학적 지식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우리가 그 지식을 '절대적 진리'라고 맹신하는 태도를 경계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과학이 '필연적인' 법칙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개연성'을 가진 규칙성을 발견하는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오히려 과학적 겸손함과 지속적인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됩니다.
흄은 우리가 인과관계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삶을 영위하는 것은 '습관'이나 '기대'에 의한 것이며, 이는 인간 본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성적 근거가 없더라도 실천적인 삶에서는 인과관계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예측이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인지하고, 유연한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던집니다. 우리가 확고하게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이성의 검증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세계를 이해하고 삶을 살아갈 것인가?
흄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의 근거를 되묻고, 우리의 지식이 가진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라고 조언합니다. 그의 철학은 불안정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잃지 않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유연하게 삶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내린 결정이나 믿었던 사실들 중, 흄이 던진 질문을 적용해 볼 만한 것이 있었나요? 우리는 왜 어떤 정보는 쉽게 믿고, 어떤 정보는 의심할까요? 우리 내면의 '습관'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