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달리는 기차의 기관사라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두 갈래의 선로를 마주했습니다. 한 선로에는 다섯 명의 인부가, 다른 선로에는 한 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선로로 방향을 돌리겠습니까? 5명 대신 1명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일까요?
이 질문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근대 윤리학의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 사상, 바로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오늘은 우리의 일상적인 고민부터 사회 전체의 방향까지 결정하는 이 강력한 철학 속으로 들어가, 그 선구자들인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이야기를 함께 탐험해 보겠습니다.
벤담과 밀: 가장 많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기술
• 존 스튜어트 밀: 쾌락에는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고급 쾌락'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인다.
• 공리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윤리적 원칙으로, 사회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어떤 쾌락을 '고급 쾌락'이라 부르고, 어떤 쾌락을 '저급 쾌락'이라 부를 수 있을까?
3. 소수의 희생이 다수의 행복을 위해 정당화될 수 있는 지점은 어디까지일까?
제레미 벤담은 왜 행복을 '계산'하려 했을까?
18세기 말, 산업 혁명의 격변기 속 영국은 빈부 격차와 사회 문제가 심화되던 때였습니다. 벤담은 당시의 혼란 속에서 법과 제도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도덕과 입법이 명확하고 객관적인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죠. 모든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심리적 쾌락주의’에 기반하여, 그는 이 원칙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서 찾았습니다.
벤담에게 행복은 측정 가능하고, 더하고 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수학 방정식처럼 말이죠. 그는 이러한 '행복 계산'을 통해 가장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제레미 벤담은 자신의 신체를 보존하여 '오토-아이콘(Auto-Icon)'으로 만들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체가 살아있는 철학적 메시지가 되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의 오토-아이콘은 현재 런던 대학교(UCL)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의 철학적 신념, 즉 '효용성'을 극대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자, 기존의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는 그의 급진적 사유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입니다.
벤담의 '행복 계산(Hedonic Calculus)' 쉽게 이해하기
벤담은 쾌락과 고통을 측정하기 위한 7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행복 계산' 또는 '쾌락 계산'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행동이 가져올 쾌락과 고통의 양을 계산하여,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클 때 그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벤담의 7가지 기준
- 강도(Intensity): 쾌락/고통이 얼마나 강한가?
- 지속성(Duration): 쾌락/고통이 얼마나 오래 가는가?
- 확실성(Certainty): 쾌락/고통이 얼마나 확실하게 일어날 것인가?
- 근접성(Propinquity): 쾌락/고통이 얼마나 빨리 올 것인가?
- 다산성(Fecundity): 쾌락이 더 많은 쾌락을 낳고, 고통이 더 많은 고통을 낳을 가능성은?
- 순수성(Purity): 쾌락 속에 고통이 섞여 있거나, 고통 속에 쾌락이 섞여 있을 가능성은?
- 범위(Extent): 쾌락/고통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오늘 밤 피자 한 판을 시켜 먹을까, 아니면 운동을 갈까?"
- 피자: 강도(높음 - 맛있다!), 지속성(짧음 - 먹고 나면 끝), 확실성(높음), 근접성(높음 - 바로 만족), 다산성(낮음 - 살찜), 순수성(낮음 - 먹고 나면 후회), 범위(낮음 - 나 혼자).
- 운동: 강도(낮음 - 힘들다), 지속성(김 - 건강해짐), 확실성(낮음 - 꾸준히 해야 함), 근접성(낮음 - 당장 만족 없음), 다산성(높음 - 활력, 체력 증진), 순수성(높음 - 성취감), 범위(높음 - 주변에 긍정적 영향).
벤담이라면 이 7가지 기준으로 각 행동의 총 쾌락 점수를 계산하여 더 높은 쪽을 선택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피자가 더 맛있을 것 같죠? 바로 이 지점에서 밀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에 '질'을 더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비판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벤담의 공리주의가 '돼지의 철학'으로 비판받는 지점을 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쾌락이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서를 통한 지적 쾌락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쾌락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죠.
밀은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말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지적 능력을 활용하는 '고급 쾌락'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고급 쾌락은 장기적으로 더 큰 행복과 성장을 가져다주며, 인간 사회의 진보에도 기여한다고 보았습니다.
밀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벤담의 사상에 입각한 강도 높은 지적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3살에 그리스어를 배우고 8살에 라틴어를 익혔으며, 10대 초반에 이미 고전 철학을 섭렵했습니다. 그러나 20대 초반,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벤담식의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삶의 방식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감성적이고 질적인 측면을 공리주의에 통합하려는 시도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공리주의는 오늘날에도 국가 정책, 기업 윤리, 개인의 의사 결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 백신 배분, 기후 변화에 대한 정책 결정, AI 윤리 문제 등 '어떤 선택이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올까?'라는 질문 앞에는 항상 공리주의적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항상 비판에 직면합니다.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비판, 쾌락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는 비판, 그리고 개인의 권리나 정의를 간과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그것입니다.
당신이 직장에서 팀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팀원 중 한 명의 능력이 부족하여 전체 프로젝트의 진행이 더뎌지고 있습니다. 이때 당신은 그 팀원을 교체하고 효율성을 높여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이 '최대 다수(팀 전체와 회사)의 최대 행복'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한 개인의 감정과 성장 기회를 희생시키는 결정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공리주의가 던지는 질문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공리주의는 ‘결과’를 중시하는 대표적인 윤리 이론입니다. 반면, 이마누엘 칸트의 의무론은 ‘동기’와 ‘의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칸트라면 결과가 좋더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절대 도덕적이지 않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칸트: "거짓말은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낳더라도 그 자체로 도덕적이지 않다. 행동의 옳고 그름은 그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행동을 하려는 의지와 보편적 규칙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벤담/밀: "하지만 당신의 엄격한 규칙이 때로는 너무 많은 고통을 낳거나, 가장 많은 행복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현실적인 효용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대립은 윤리학의 핵심적인 두 갈래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양한 사유의 길을 제시합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개인의 행복 추구가 집단 전체의 행복과 항상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이기심이 충돌할 때,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한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중요한 전제입니다.
이것은 공리주의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입니다. 밀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일정 부분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단순한 양적 계산을 넘어서는 '질'적인 가치와 정의의 중요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입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라는 고대의 질문을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근대적이고 실용적인 질문으로 전환시켰습니다. 그들의 사유는 우리가 직면하는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중요한 판단의 기준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측정하고 추구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가치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
오늘 하루 당신이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어떻게 '최대 다수의 행복'과 연결될 수 있을지, 혹은 어떤 상황에서 공리주의적 판단이 어려워지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철학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숨어있는 질문들을 찾아내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입니다.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