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9월, 코펜하겐의 젊은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평생의 사랑이었던 레기네 올센과의 약혼을 파기합니다. 깊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멜랑콜리와 '신앙적 소명'이라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이별을 선택합니다. 레기네는 그의 일생에 걸친 고뇌의 원천이자, 그의 철학을 잉태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과연 그녀와의 관계를 '반복'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반복'이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는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어떻게 영원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키르케고르, '반복'과 '순간'의 핵심 통찰
• '순간(Øieblikket)'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원, 즉 절대적이고 신적인 의미가 침투하는 역설적인 지점입니다. 진정한 실존적 결정과 신앙은 이 '순간'에서 이루어집니다.
• 이 두 개념은 우리가 유한한 삶 속에서 어떻게 무한한 의미와 마주하고,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키르케고르 실존주의의 핵심입니다.
2. 바쁜 일상 속에서 당신의 삶을 결정짓는 '순간'들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3.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나가기 위해 당신은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키르케고르는 왜 '반복'과 '순간'을 생각했을까?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그의 개인적인 고뇌와 실존적인 불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레기네 올센과의 약혼 파기는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아픔이자 철학적 사유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는 약혼을 파기함으로써 레기네를 향한 자신의 절대적인 사랑을 '반복'할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회상'이나 '회귀'로는 그 사랑을 되찾을 수 없음을 깨달았고, '반복'이란 그 이상의 어떤 영적 결단을 요구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헤겔의 거대한 체계철학 속에서 개인이 사라지는 것을 비판하며, 익명적인 대중 속에서 길을 잃은 개인이 어떻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신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에게 '순간'은 이러한 개인의 결단과 신앙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지점이었습니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의미 없는 존재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영원과 접속하여 비약함으로써 진정한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키르케고르는 레기네와의 파혼 이후에도 그녀를 평생 사랑했고, 그녀가 결혼한 후에도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며 영적인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이 파혼이 자신의 '멜랑콜리'와 '종교적 소명' 때문이었다고 말했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너무나 강렬했던 육체적 관계가 주는 유한성을 피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그의 철학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과 번뇌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반복'과 '순간' 쉽게 이해하기
키르케고르의 사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반복'과 '순간'과는 다릅니다. 이 개념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까요?
핵심 개념 1: 반복(Gjentagelsen)이란?
키르케고르의 '반복'은 과거로 돌아가는(Recollection, 기억)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놀았던 동네에 다시 가서 그 시절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갇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의 '반복'은 과거의 본질적인 것을 현재에 '새롭게 다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치 강에서 한번 흘러간 물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지만, '강'이라는 본질은 계속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 진정한 반복은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유한한 인간은 과거를 되돌릴 수 없지만, 신앙 안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실패나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음으로써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반복입니다. 개인의 실존적 결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반복'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어렸을 때 처음으로 즐거웠던 소풍을 '기억'하는 것은 추억에 잠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소풍에서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과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지금 이 순간, 다시 새로운 삶의 자리에서 '찾아내고' 경험하는 것은 '반복'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 속에서 동일한 본질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살아내는 행위입니다. 이 새로운 발견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실존적 의미를 가집니다.
핵심 개념 2: 순간(Øieblikket)이란?
'순간'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 중 한 지점이 아닙니다. 키르케고르는 '순간'을 시간(Temporality)과 영원(Eternity)이 만나는 역설적인 지점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 살지만, 동시에 영원한 것(신, 진리, 절대적 가치)을 추구합니다. 이 둘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순간'입니다.
이 '순간'에 인간은 영원한 진리를 깨닫고, 궁극적인 결단을 내리며, 진정한 신앙의 비약을 이룹니다. '순간'은 어떤 외부적 사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불안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결단하고 책임지는 실존적 선택의 지점입니다. 마치 번개가 치듯, 이 순간에 진리가 번뜩이며 들어오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바로 그 찰나, 또는 오랜 고민 끝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그 찰나. 이 순간들은 단순한 시간의 한 점이 아니라, 당신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영원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순간은 '과거'와 '미래'의 연속선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영원한 의미가 개입하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 결정과 고백은 당신의 존재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게 됩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키르케고르의 '반복'과 '순간' 개념은 빠르게 변화하고 불확실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 과거에 대한 새로운 접근: 우리는 흔히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실패를 후회하며 과거에 갇히곤 합니다. 키르케고르의 '반복'은 과거의 좋았던 점을 그저 추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본질적인 가치를 현재에 새롭게 '살아내는' 용기를 요구합니다. 실패 또한 좌절의 반복이 아니라, 그 실패를 통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창조적 반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 '지금, 여기'의 중요성: 소셜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기록을 '반복'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순간'의 가치를 잊고 살아갑니다. 키르케고르의 '순간'은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결단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한 순간의 결단이 삶의 방향을 영원히 바꿀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는 곧 '마음 챙김(Mindfulness)'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 개인의 책임과 실존적 용기: 키르케고르는 대중 속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대인에게 '순간'의 결단을 통해 주체적으로 자신을 선택하고 책임지라고 촉구합니다. 이는 불안과 마주하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용기를 의미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순간'의 가치를 찾아보세요. 식사를 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혹은 홀로 산책할 때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해보세요. 그리고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는 대신, 그 실수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오늘을 새롭게 '반복'하며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결단을 시도해보세요. 이는 습관을 바꾸는 작은 반복, 매일 감사를 실천하는 반복처럼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키르케고르의 '반복'과 '순간'은 다른 철학자들의 시간 개념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플라톤의 '상기(Anamnesis)' vs. 키르케고르의 '반복': 플라톤은 우리가 진리를 '기억'하는 것, 즉 이데아 세계에서 보고 왔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과거에 이미 존재했던 완전한 것을 되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의 '반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믿음과 결단을 통해 과거의 본질을 현재에 '새롭게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플라톤이 과거의 완전성을 바라본다면, 키르케고르는 신앙과 결단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기 창조를 강조합니다.
헤겔의 '변증법적 나선형' vs. 키르케고르의 '순간': 헤겔은 역사가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며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사유에서 개별적 '순간'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포섭됩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전체주의적 사유를 비판하며, 개인의 '순간'적인 결단과 비약, 즉 '도약'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와 영원을 포착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역사의 필연성에 기대지 않고, 개인이 홀로 '순간'에 서서 책임지는 존재론적 차이를 강조한 것입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네, 키르케고르에게 진정한 '반복'은 과거의 상실이나 아픔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비약을 통해 과거의 본질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절망을 넘어선 '희망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에게 '순간'은 어떤 외부적 조건이나 우연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이 자신의 불안과 유한성을 직시하고, 삶의 의미와 신앙을 향해 '비약'하려는 의식적인 결단에서 발생합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며,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실존적 노력을 통해 '순간'은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일상의 시간은 흘러가지만,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그 순간의 의미가 단순히 시간의 한 점을 넘어선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삶을 영원히 바꿀 결혼 서약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신앙 고백과 같은 순간입니다. 이 순간들은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한 가치와 연결되며, 존재의 심오한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키르케고르의 '반복'과 '순간'은 우리가 삶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매 순간을 의식적으로 살아가며 의미를 부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그저 회상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기억 속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오늘을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반복'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의식적으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속에서 영원한 의미와 마주하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반복'과 '순간'이 교차하며 영원한 의미를 만들어가는 신비로운 여정임을 키르케고르는 일깨워줍니다. 당신의 삶은 어떤 '반복'과 '순간'으로 채워질까요?
당신의 삶에서 가장 '반복'하고 싶은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가치를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낼 수 있을까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