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1년, 프랑스 남서부 페리그르 지방의 한 성. 미셸 드 몽테뉴는 삶의 한가운데서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고독한 사유의 공간인 원형 서재 탑으로 들어섰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과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던 혼돈의 시대. 그는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서재 벽에는 질문 하나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Que sais-je?” (내가 무엇을 아는가?)
근대 회의주의: 몽테뉴와 흄의 핵심 통찰
• 성찰과 개방성: 독단주의를 경계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다른 관점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강조합니다.
• 삶의 지혜와 관용: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삶의 본질적인 혼돈 속에서 인간적인 지혜와 윤리적 태도를 찾아 나아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2. 내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왜 중요한가?
3.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에 회의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실질적인 지혜는 무엇일까?
몽테뉴와 흄은 왜 회의주의를 택했을까?
16세기, 몽테뉴는 종교적 광신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던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를 이단으로 몰아붙이며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잔혹한 폭력을 정당화했죠. 그는 그들의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오류투성이일 수 있는지를 목격했습니다. 몽테뉴의 회의주의는 이러한 독단주의에 대한 인간적인 반발이자, 관용과 평화를 위한 지혜였습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흄은 이성과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하던 계몽주의 시대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경험을 통해 모든 지식을 얻는다는 '경험론'의 철저한 추종자였지만, 그 경험론을 끝까지 밀어붙여 도리어 모든 지식의 확실성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흄에게 회의주의는 맹목적인 믿음을 깨고 인간 이성의 진정한 한계를 탐구하는 냉철한 과학적 태도였습니다.
몽테뉴: 어린 시절부터 라틴어 환경에서 자라 고전을 섭렵했습니다. 법관으로 일했지만, 격변하는 시대와 인간의 잔혹함에 환멸을 느끼고 38세에 은퇴하여 서재에 틀어박혔습니다. 그의 수상록은 인간의 나약함과 변화무쌍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정답이 아닌 질문 자체를 삶의 방식으로 삼았습니다.
흄: 온화하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그의 사상은 당시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불경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신의 존재나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교수가 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종종 자신의 급진적인 철학이 대중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며 신중하게 접근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주의, '내가 무엇을 아는가?'에서 시작되다
근대 회의주의는 '나는 과연 어떤 것을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이 질문은 고대 그리스의 피론주의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지만, 몽테뉴와 흄에 이르러 개인의 경험과 이성의 한계라는 근대적 맥락에서 새롭게 부활했습니다.
미셸 드 몽테뉴: 'Que sais-je?' – 인간 존재의 겸손
몽테뉴의 회의주의는 극단적인 지식의 부정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오만함과 독단주의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관용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수상록은 끊임없이 자신을 질문하고, 자신의 경험과 감각, 그리고 생각을 의심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합니다. 그는 "내가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모든 '확신'에 물음표를 던지며, 겸손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에세이(Essai)'라는 단어는 원래 '시도하다', '시험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몽테뉴는 자신의 글을 '에세이'라고 부르며, 어떤 최종적인 결론이나 진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시험해보고', '시도해보는' 과정 자체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그의 회의주의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데이비드 흄: 경험론의 극단, 인과의 필연성은 없다?
흄의 회의주의는 몽테뉴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온다고 주장하는 '경험론'을 철저히 밀어붙여,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의 근거를 뒤흔들었습니다. 특히 그가 던진 두 가지 큰 질문은 철학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 인과율에 대한 회의: 우리는 "A가 B를 발생시킨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A 다음에 B가 일어난다'는 반복적인 현상일 뿐, A가 B를 '반드시' 발생시킨다는 필연적인 연결 고리는 경험할 수 없습니다. 흄은 인과율이 단지 반복된 경험에서 오는 '습관'이나 '기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 귀납의 문제: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예: "태양은 내일도 뜰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보장한다는 논리적 근거는 없습니다. 흄은 이것이 단지 '습관'에 따른 '믿음'일 뿐,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흄은 우리의 지식이 이성적 추론보다는 감각적 인상과 그것들의 연합, 그리고 습관에 의해 형성된 '믿음'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성의 한계를 명확히 했습니다.
당신이 당구공 A를 쳐서 당구공 B에 맞혔을 때, B가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A가 B를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흄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A가 B를 '움직이게 만드는 필연적인 힘'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A의 움직임 다음에 B의 움직임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을 뿐인가?" 흄은 우리가 '습관적 연합'을 통해 인과관계를 상상할 뿐, 실제로는 두 사건 사이의 필연적인 연결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회의주의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정보의 홍수와 '확증 편향'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몽테뉴와 흄의 회의주의는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특정 정보나 의견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며, 이는 종종 독단적인 태도나 타인에 대한 불관용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 가짜뉴스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비판적 사고: 흄의 회의주의는 우리가 정보를 접할 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나 '익숙한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근거를 요구하는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을 경계하고, '정말로 이 정보가 확실한가?'라고 묻게 합니다.
- 다양한 관점과 관용: 몽테뉴의 회의주의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의 신념이 절대적 진리가 아닐 수 있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열린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태도입니다.
- 지적 겸손과 끊임없는 배움: '내가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아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합니다. 이는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자신의 오류를 기꺼이 인정하며 성장하는 지적 겸손의 태도로 이어집니다.
✔️ 정보를 접할 때: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 '다른 관점은 없을까?' 질문하며 무조건적으로 믿지 마세요.
✔️ 논쟁 상황에서: 내 주장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를 가져보세요.
✔️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기존의 지식에 갇히지 않고, 언제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준비를 하세요.
회의주의에 대한 다른 철학자들의 생각은?
회의주의는 서양 철학사 내내 중요한 대화 주제였습니다. 특히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흄보다 앞서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를 시도했지만, 그 목적은 흄과는 달랐습니다.
데카르트 vs. 몽테뉴 & 흄:
- 데카르트: 모든 것을 의심했지만, 그 의심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려 했습니다. 회의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자 '도구'였습니다.
- 몽테뉴 & 흄: 이들에게 회의는 최종적인 '답'이 아니라, 인간 지식의 '본질적인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였습니다. 몽테뉴는 '확신' 자체를 경계했고, 흄은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확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의 삶은 이성적 확실성이 아닌 '습관'과 '믿음'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습니다. 즉, 데카르트가 회의를 넘어선 확실성을 추구했다면, 몽테뉴와 흄은 회의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몽테뉴와 흄의 회의주의는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염세주의와는 다릅니다. 이들은 우리가 '확실히 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겸손한 의심'을 제기합니다. 흄은 회의를 통해 결국 우리는 이성적 추론이 아닌 '습관'과 '믿음'에 의해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몽테뉴는 독단적인 신념 대신 '관용'과 '삶의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극단적인 회의는 피로를 낳지만, 적절한 회의는 오히려 삶의 유연성과 지적 성장을 가능하게 합니다.
흄의 주장은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를 명확히 했습니다. 과학이 '인과 관계'를 발견한다고 할 때, 흄은 그것이 실제 세계의 '필연적인 연결'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찰과 반복을 통한 기대'에 기반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과학의 예측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근본적인 '확실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흄 이후 과학철학은 흄의 질문을 바탕으로 과학적 지식의 본질을 더 깊이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몽테뉴와 흄의 회의주의는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과연 무엇을 아는가? 당신의 '확신'은 정말 진실인가?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두 철학자는 확고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곧 삶의 지혜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나 확실한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무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 때, 우리는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던 의견이나 신념 중, 다시 생각해보니 의심할 여지가 있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나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