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세요. 오늘날 당신이 사는 사회가 갑자기 무너진다면? 법과 질서가 사라지고, 모두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세상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혹은 반대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단 한 명의 통치자가 우리의 모든 삶을 통제한다면요? 우리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세 명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홉스, 로크, 그리고 루소입니다.
사회계약론: 국가와 개인의 이상적인 관계
• 인간 본성과 이상적 국가: 각 철학자는 인간 본성을 다르게 보았고, 이에 따라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도 다르게 제시했습니다.
•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 이들의 사상은 현대 민주주의, 인권, 자유의 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갈등과 선택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2. 나의 자유 중 어느 정도를 국가에 위임하는 것이 합당할까요?
3. 국가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단순히 힘에서 오는 것일까요?
왜 이들은 '사회계약'을 고민했을까?
17세기와 18세기는 유럽 역사에서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절대 왕정이 흔들리고, 종교 전쟁과 시민 혁명이 끊이지 않았죠. 이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과연 국가는 왜 존재하며, 우리는 왜 국가의 통치에 복종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홉스, 로크, 루소는 각자 다른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 1588-1679)는 영국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청교도 혁명)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질서 없는 삶은 지옥과 같다'는 깊은 인상을 남겼고, 강력한 국가 권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존 로크 (John Locke, 1632-1704)는 명예혁명을 겪으며 의회의 권한과 시민의 권리가 신장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개인의 '자연권'을 중요하게 여기며, 정부는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프랑스 혁명 직전의 불평등한 사회를 살면서, 문명과 사회가 오히려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꿈꿨습니다.
세 거장의 '사회계약론' 비교
세 명의 철학자는 모두 '자연 상태(State of Nature)'라는 가상의 상황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왜 '사회계약(Social Contract)'을 통해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하지만 각자가 상정한 자연 상태의 모습, 계약의 내용, 그리고 그 결과 탄생하는 국가의 형태는 확연히 다릅니다.
1. 토마스 홉스: 모든 자유를 포기하고 절대 권력을 택하다
홉스에게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상태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오직 자기 보존을 위해 투쟁하며,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잔인하며, 짧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은 자신의 모든 권리(심지어 생명 유지의 권리까지도)를 포기하고, 하나의 강력한 주권자(리바이어던, Leviathan)에게 넘겨주는 계약을 맺습니다. 이 주권자의 권력은 절대적이며, 그 어떤 저항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혼란을 막고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홉스는 주장했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에서 따온 이름으로, 홉스가 쓴 저서의 제목이자 그가 상정한 절대적인 국가 권력을 상징합니다. 마치 괴물처럼 강력한 힘으로 시민들을 통제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입니다.
2. 존 로크: 자연권을 보존하기 위한 제한된 정부
로크가 본 자연 상태는 홉스와는 다릅니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자연권(Natural Rights)'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에 대한 권리입니다. 또한 인간은 이성적이며, 자연법에 따라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권이 침해되었을 때, 이를 공정하게 심판해 줄 제3의 기관이 없다는 '불편함' 때문에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로크의 사회계약은 개인의 자연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부의 권력은 제한적이고, 만약 정부가 시민의 자연권을 침해한다면 시민은 저항하고 정부를 바꿀 '혁명권(Right of Revolution)'을 가집니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됩니다.
로크는 인간이 태어날 때 아무것도 없는 '백지(tabula rasa)' 상태이며, 경험을 통해 지식이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이 백지 위에 자연법과 자연권이라는 '본능적인 이성'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어떤 인위적인 법보다도 우선합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3. 장 자크 루소: 공동의 의지, '일반 의지'를 통한 진정한 자유
루소의 자연 상태는 앞선 두 철학자와 또 다릅니다. 그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이라고 표현하며, 문명화되기 전의 인간은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평등했다고 보았습니다. 불평등과 타락은 사유 재산 제도가 생겨나고 사회가 형성되면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죠. 루소는 이 타락한 사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제안합니다. 각 개인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공동체 전체에 양도하여 '일반 의지(General Will)'를 형성하고, 이 일반 의지에 따를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직접 민주주의와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강조하는 사상입니다.
단순히 개인들의 이익을 합한 '전체 의지(Will of All)'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진정한 선(善)을 지향하는 의지입니다. 개인이 자신의 사적인 욕망이 아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판단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일반 의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강제로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루소의 역설적인 말도 바로 이 일반 의지에 따르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의미입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단순히 과거의 이론이 아닙니다. 이들의 사상은 현대 사회의 법과 정치 시스템, 그리고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홉스의 사상은 강력한 법 집행과 질서 유지의 중요성을, 로크의 사상은 인권과 제한된 정부의 원칙을, 루소의 사상은 민주주의의 참여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한지(홉스), 아니면 개인의 자유가 우선시되어야 하는지(로크)를 고민합니다. 또한, SNS를 통한 여론 형성 과정에서 '일반 의지'가 진정으로 발현되는지, 아니면 '전체 의지'나 '특수 의지'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루소)를 성찰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사상은 AI 시대의 윤리 문제, 빅데이터를 통한 개인정보 통제, 국가의 감시와 시민의 자유 등 복잡한 현대적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줍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회계약론은 근대 정치 철학의 중요한 흐름이었지만, 모든 철학자가 이에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헤겔과 같은 이상주의 철학자들은 국가를 개인의 합의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신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는 유기체적인 존재로 보기도 했습니다. 막스 베버는 국가를 '합법적인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하는 공동체'로 정의하며, 단순히 계약의 결과가 아닌 역사적, 사회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권력 관계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루소 (to 홉스): "당신은 인간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았군! 자연 상태는 평화로웠어. 사유 재산이 인간을 타락시킨 거야. 진정한 자유는 공동체의 일반 의지에 복종하는 데 있네."
홉스 (to 루소): "환상에 불과하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일반 의지라니... 절대적인 리바이어던만이 혼란을 막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네. 당신의 '강제로 자유롭게'라는 말은 결국 폭정으로 이어질 뿐이야!"
로크 (to 홉스 & 루소): "자연권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말게. 국가는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야. 결코 절대적일 수 없으며, 시민의 동의 없이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네. 그리고 정부가 그 본분을 잊으면, 시민은 혁명할 권리가 있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현대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로크의 사상에 기반을 둔 '제한된 정부'와 '국민 주권'의 원칙을 따릅니다. 하지만 질서 유지를 위한 강력한 공권력의 필요성(홉스)이나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공동체 정신의 중요성(루소) 또한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습니다. 특정 상황이나 정책에 따라 세 철학자의 아이디어가 복합적으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암묵적 동의(tacit consent)'라는 중요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로크는 특정 사회 내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 사회의 법과 제도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항상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며, 시민 불복종 운동과 같은 형태로 사회계약에 대한 반대 의사가 표출되기도 합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인간이 '왜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각기 다른 답을 제시합니다. 이들의 사유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국가의 존재, 개인의 자유, 그리고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어떤 철학자의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느끼셨나요? 혹은 현대 사회의 어떤 지점에 가장 잘 적용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들을 가지고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 바로 그것이 철학의 시작이자 본질입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계약'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계약은 과연 공정하고 정당한 것일까요? 여러분의 삶 속에서 사회계약의 원칙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질문하고 성찰해보세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