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철학 블로그"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들을 탐구하고,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깊이 있는 통찰을 공유합니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여,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존재 물음의 새로운 출발

어느 날 문득, 고요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붐비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지?' 이 질문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흔들리는 듯한 낯선 느낌을 안겨줍니다. 20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바로 이 질문, 존재의 의미를 묻는 근원적인 물음이야말로 서양 철학이 오랜 세월 망각해왔던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이 망각된 물음을 다시 일깨우기 위해 철학의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의 대작 『존재와 시간』은 바로 그 위대한 시도의 시작입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존재 물음의 새로운 출발

🎯 핵심 메시지
• 서양 철학은 '존재(Being)' 자체의 의미를 망각하고 '존재자(beings)'에만 집중해왔다.
• 존재 물음은 '다자인(Dasein)' 즉, 인간 실존의 분석을 통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불안과 유한성을 통해 '진정한 나'로 존재할 수 있다.
🤔 스스로 질문해보기
1. 당신은 언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느껴보았는가?
2. 당신의 일상은 '평균적인 우리'에 의해 얼마나 규정되고 있는가?
3. 죽음이라는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마르틴 하이데거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19세기 말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던 마르틴 하이데거는 곧 철학으로 전향합니다. 그는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이 2천 년 넘게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고 믿었지만, 동시에 그 질문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형식적인 논쟁으로 전락해버렸다고 느꼈습니다.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어느새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가?'와 같은 특정 존재자(존재하는 개별 사물이나 개념)에 대한 질문으로 대체되어 버렸다는 것이죠. 하이데거는 이 "존재 망각"이 서양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예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 물음을 재개하고자 했습니다.

🎭 하이데거의 삶

하이데거는 1927년 『존재와 시간』을 발표하며 단숨에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라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깊이 파고들며,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당대 실존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이후 현상학, 해석학, 해체주의 등 20세기 철학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자인(Dasein)과 존재 물음 쉽게 이해하기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를 묻기 위해, 먼저 존재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 즉 '인간'에게 주목합니다. 그는 인간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인간(Mensch)'이라는 용어 대신, '거기-있음(Da-sein, 다자인)'이라는 독특한 용어를 사용합니다. 다자인은 단순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물들과 달리, '내가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살아갑니다. 이 물음이 바로 하이데거가 다시 일깨우고자 했던 '존재 물음'의 출발점입니다.

다자인의 핵심 특성: 세계-내-존재와 피투성

하이데거에게 다자인은 항상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입니다. 우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항상 어떤 '세계' 속에서,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 맺으며 존재합니다. 또한, 우리는 '피투성(Geworfenheit)'을 지닌 존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채 어떤 특정한 시공간과 사회적 환경 속에 '던져져(geworfen)' 있습니다. 우리는 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일상성과 비본래적 존재

대부분의 다자인은 '평균적인 우리(Das Man)'의 방식, 즉 '일상성(Alltäglichkeit)' 속에 매몰되어 살아갑니다. 우리는 남들이 사는 대로 살고,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며, '진정한 나'의 가능성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비본래적(uneigentlich)' 존재라고 부릅니다. 현대 사회의 SNS나 미디어 속에서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 애쓰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비본래적 존재'의 단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해하기 쉬운 예시

당신이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할까?'라는 질문 대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평균적인 우리'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려는 '비본래적' 태도에 가깝습니다. 반면, 자신의 불안과 유한성을 직시하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본래적' 존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죽음과 본래적 존재

하이데거는 다자인에게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죽음에로의 존재(Sein zum Tode)'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이 '죽음'이라는 가장 확실한 가능성 앞에서 비로소 우리는 삶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평균적인 우리'에게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존재하려 합니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며 '본래적(eigentlich)'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강조합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하이데거의 철학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남들의 시선'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살아갑니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나 유튜브의 '구독자 수'는 우리의 존재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고, 우리는 '평균적인 우리'의 기준에 맞춰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하려 합니다. 이러한 '일상성'과 '비본래적 존재'의 경향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우리가 이런 비본래적 존재를 넘어서 '본래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시작은 바로 자신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삶의 불안과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가능성 앞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불안은 결코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나'를 발견할 기회를 제공하는 실존적 신호일 수 있습니다.

🌟 우리 삶 속에서

현대인의 '번아웃'이나 '존재론적 불안'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 물음을 회피한 채, 사회적 기대와 비본래적인 삶에 갇혀 있을 때 찾아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나는 누구인가?', '나의 유한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진지하게 물어볼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이데거 이전의 서양 철학은 주로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영원불변한 존재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통해 존재를 설명하려 했죠. 그들은 '존재하는 것들(beings)'의 본질을 밝히는 데 주력했습니다. 반면 하이데거는 이런 방식으로는 '존재한다는 것 자체(Being)'의 의미를 결코 파악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존재를 어떤 '개념'이나 '대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가 존재를 망각하는 길이라고 비판하며, 존재는 오직 '존재하는 방식' 즉, '다자인의 실존'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접근은 철학의 오랜 전통에 대한 급진적인 단절이자,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재접근을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 철학자들의 대화

하이데거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존재를 '대상'으로 취급함으로써 존재의 '현존성(presence)'을 간과했다고 비판합니다. 예를 들어, 책상이라는 존재자는 우리 앞에 '있음'으로써 그 존재를 드러내지만, 우리는 그 '있음' 자체보다는 '책상'이라는 사물에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눈앞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모든 존재자에게 근원적인 '존재(Being)'의 의미를 다시 탐색하려 했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하이데거는 왜 굳이 '인간'이라는 용어 대신 '다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이성적인 존재' 등 다양한 정의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런 규정들이 인간의 '존재하는 방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다자인'은 인간이 자기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유일한 존재자라는 점, 그리고 항상 '어딘가에 던져져(Da-sein)' 있는 존재라는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인간을 단순히 생물학적 또는 이성적 존재로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실존하는 존재'로서 바라보게 합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 망각'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이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하는 것들(beings)'의 본질(예: 의자라는 존재자의 본질, 인간이라는 존재자의 본질)에만 집중하여, 정작 모든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 즉 '존재(Being)'의 근원적인 의미를 잊었다고 주장합니다. 존재 망각은 우리가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왜곡시키며,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존재 물음을 다시 던지는 것은 우리가 세계와 자신을 비로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입니다.

죽음이라는 유한성이 '본래적' 존재로 나아가는 열쇠가 되는 이유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궁극적인 가능성이며, 누구도 대신 죽어줄 수 없는 '나만의' 가능성입니다. 죽음을 직면할 때, 우리는 '평균적인 우리'가 정해놓은 삶의 방식이나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이 부여할 수 있는 의미를 찾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선택하게 됩니다. 죽음의 인식이 삶의 유한성을 깨닫게 하고, 제한된 시간 속에서 더욱 충만하게 존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죠.

함께 생각해보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결코 쉽지 않은 책입니다. 하지만 그의 사유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존재'의 의미,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 소외감, 혹은 삶의 무의미함은 어쩌면 '존재 물음'을 망각한 채 '평균적인 우리'의 삶에 갇혀 있을 때 나타나는 실존적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그 신호를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용기 있게 직면하여 '진정한 나'의 가능성을 탐색하라고 말합니다.

철학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하이데거와 함께 '존재 물음'을 던져보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귀중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계속되는 사유

오늘 당신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당신의 일상 속에서 '평균적인 우리'가 아닌, '진정한 당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고 확장할 수 있을까요?

💭
생각해볼 점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