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출근길에는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며, 점심에는 배달 앱을 뒤적이고, 밤에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에 몰두하는 삶. 우리는 기술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엄청난 편리함 뒤에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나 공허함이 따라오는 것은 왜일까요? 스마트폰 화면 속 나의 모습은 과연 '진정한 나'일까요, 아니면 데이터 속의 '나'일까요?
오늘 우리는 20세기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 중 한 명인 마르틴 하이데거와 함께, 이 물음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단순히 편리한 도구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술이 '존재' 그 자체를 뒤흔드는 방식, 즉 인간 존재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이데거의 기술론: 핵심 통찰 정리
• 이 게슈텔은 모든 것을 ‘스탠딩 리저브(Bestand: Standing-Reserve)’로 만드는데, 이는 자연과 인간마저도 끊임없이 계산되고 활용될 자원으로 변모시킵니다.
• 기술 시대의 인간은 자신의 존재 본질을 잊고, 기계 시스템의 일부로 전락할 위험에 처합니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존재 망각’의 심화라고 보았습니다.
2. 나는 기술을 통해 더 자유로운가, 아니면 기술 시스템의 '자원'으로 이용당하고 있는가?
3. 디지털 공간에서의 '나'는 현실의 '나'와 어떻게 다른가? '진정한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하이데거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0세기 초, 급격한 산업화와 세계 대전을 겪으며 기술 문명이 인간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가 결국 '존재'를 잊고, 존재를 객체로, 대상으로만 파악해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 망각이 현대 기술에서 극에 달했다고 보았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현존재(Dasein)'라고 부르며, 현존재는 언제나 '세계-내-존재'로서 세계와 관계 맺고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이러한 본질적인 관계가 왜곡될 위험에 처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독일의 작은 마을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나, 말년에는 슈바르츠발트(흑림)의 좁은 오두막에서 은둔하며 사색에 잠기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의 단순하고 자연 친화적인 삶은 현대 기술 문명의 맹목적인 진보와 대비되는 모습으로, 기술이 인간 존재를 어떻게 '벗어나게' 하는지에 대한 그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그는 시골 오두막에서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습니다.
‘게슈텔’과 ‘스탠딩 리저브’ 쉽게 이해하기
하이데거에게 기술은 단순한 도구(예: 망치, 자동차)를 넘어섭니다. 그는 기술을 세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 즉 ‘게슈텔(Gestell: Enframing)’이라고 정의합니다. 게슈텔은 어떤 존재가 자신을 특정 방식으로 드러내도록 ‘강요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을 총체적으로 지배합니다.
게슈텔(Gestell): 존재를 '자원화'하는 틀
게슈텔은 단순히 우리가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우리를 통해 작동하며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하고 지배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근원적인 방식입니다. 이는 자연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인간의 목적을 위한 '자원'으로 변환시킵니다.
폭포를 상상해봅시다. 시인의 눈에는 웅장한 자연의 경이로움이지만, 기술의 눈에는 '수력 발전의 잠재력'일 뿐입니다. 여기서 폭포는 '에너지 자원'으로 '게슈텔'되어 드러납니다. 그 경이로움이나 신비는 사라지고, 오직 활용 가능성만이 남습니다. 이는 폭포를 '스탠딩 리저브(Bestand: Standing-Reserve)'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즉, 항상 대기하고 있으며, 언제든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원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효율적인 시간'을 관리하고, SNS에서 '좋아요'를 받으며 '인맥'을 형성합니다. 우리의 시간, 관계, 심지어 우리의 감정까지도 알고리즘에 의해 '데이터'로 변환되어 '스탠딩 리저브'가 될 수 있습니다.
스탠딩 리저브(Bestand): 언제든 활용될 준비가 된 자원
게슈텔이 사물과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스탠딩 리저브는 그렇게 드러난 사물과 존재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최적화되고, 효율적으로 배열되며, 잠재적 사용을 위해 대기하는 상태가 됩니다. 인간마저도 노동력, 소비자, 데이터 제공자로서 이 스탠딩 리저브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 하이데거의 경고입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하이데거의 기술론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더욱 강력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초연결사회는 하이데거가 우려했던 '게슈텔'의 지배를 더욱 가속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알고리즘의 지배: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관심사를 '데이터'로 프레임화하고, 우리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며 우리를 '이용 가능한 소비자'로 만듭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사유와 판단은 알고리즘의 예측 가능한 흐름 속에 놓일 위험이 있습니다.
- 인간의 자원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에서 우리는 하나의 유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효율적으로 배치되고 관리되는 '노동 자원'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 노동조차도 '서비스 역량'으로 계산됩니다.
- 환경의 파괴: 자연은 더 이상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채굴될 자원', '개발될 부지', '처리될 폐기물'로만 인식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환경 위기를 심화시키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배경이 됩니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 태도, 즉 ‘겔라센하이트(Gelassenheit: Releasement, 내맡김)’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기술에 맹목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기술의 본질을 성찰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 디지털 디톡스: 때때로 기술과의 연결을 끊고, 자연과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의미 발견: 기술을 사용하는 목적과 그 의미를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단순히 효율을 위해서만 기술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진정한 관계나 가치 창출을 위해서 사용하는가?
- 느림과 사유: 빠른 정보의 흐름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깊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시를 읽거나,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비생산적인’ 행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봅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이데거 외에도 많은 철학자가 기술 문명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하이데거의 독특한 시선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자크 엘륄 (Jacques Ellul):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엘륄은 하이데거와 유사하게 현대 기술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기술이 스스로 자율성을 획득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기술적 사회'의 도래를 경고했습니다. 그는 기술이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향을 지적했습니다.
-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현대의 역사학자 하라리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인간을 '해킹'하고, 더 나아가 인간성을 재정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인간이 데이터화되면서 자유의지가 위협받고,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독재'가 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하이데거의 '스탠딩 리저브'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마르크스는 기술(생산력)을 인간 해방의 도구로 보았지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품으로 만들고 소외시킨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는 기술이 어떤 '프레임' 속에서 사용될 때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의 관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그렇지 않습니다. 하이데거는 기술 그 자체를 악으로 본 것이 아니라, 기술의 '본질', 즉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인 '게슈텔'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그는 기술 속에 구원의 가능성도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이 곧 구원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이데거는 '겔라센하이트(Gelassenheit)'와 '사유적 숙고(meditative thinking)'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계산적이고 효율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존재 그 자체를 경청하고, 사물의 본질에 깊이 다가가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예술, 시, 자연과의 교감 등을 통해 이러한 사유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데이터 수집과 개인 정보 침해, 알고리즘의 편향성, 인간 노동의 자동화와 소외, 환경 파괴 등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기술을 '자원'으로만 보는 게슈텔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통찰은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하이데거는 기술 시대의 인간이 겪는 위기를 단순히 도구의 문제가 아닌, 존재론적인 문제로 확장시켰습니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얻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매몰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술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동시에 기술의 위험을 직시하는 것이 곧 구원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에 맹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 '겔라센하이트'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기술 시대 속에서도 진정한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우리 존재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단순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숙제일 것입니다. 당신은 기술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