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무엇을 할까?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 우리는 매 순간, 때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이 거대한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때때로 압도적인 불안감을 느낍니다. 차라리 누군가 나 대신 모든 것을 정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선택의 권한이 온전히 우리에게만 있다면 어떨까요? 피할 수 없는, 너무나 거대한 선택의 의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요?
사르트르의 자유: 핵심 통찰 정리
•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떤 본질(정의)도 없으며,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며 본질을 만들어갑니다.
• 이 절대적인 자유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총체적 책임'을 부여하며, 그 책임감은 '불안', '내던져짐', '절망'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납니다.
2. 나는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얼마나 온전히 책임지고 있는가?
3. 혹시 나는 '진정성 없는 삶'을 살며 나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르트르는 왜 '자유로운 저주'를 이야기했을까?
20세기 중반, 세계대전의 참혹함과 이념 갈등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신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전통적인 도덕률이 흔들리자,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더욱 절실해졌죠.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이 혼돈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며 '실존주의'라는 새로운 사유를 제시했습니다. 그에게 인간은 그 어떤 정해진 목적이나 본질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였습니다.
사르트르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군 포로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수용소 생활은 그에게 깊은 고뇌와 성찰의 시간을 주었죠. 전쟁의 비극과 인간의 한계 속에서 그는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큰 의미와 책임을 가지는지를 직접 경험하며, 그의 자유론은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담게 되었습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정해진 나는 없다
사르트르의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는 명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드는 칼은 '자르는 도구'라는 본질을 먼저 가진 다음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인간성'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 세상에 '존재(실존)'한 다음,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 즉 '나다움'을 만들어간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백지 상태로 세상에 던져진 화가와 같습니다. 캔버스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오직 화가인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죠.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기투(企投, projet)'하며 만들어 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끝없는 자유 앞에서 우리는 절대적인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세 가지 고통
사르트르에게 자유는 마냥 달콤한 해방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었죠. 그는 이 자유가 인간에게 세 가지 고통을 안겨준다고 말했습니다.
1. 불안 (Angoisse)
우리의 모든 선택은 단순히 나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르트르는 "나는 선택할 때마다 나 자신을 만들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내가 하는 선택은 '인간이라면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내가 선택한 길이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이에게 옳은 길이 될 수 있다는 엄청난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낍니다. 이 불안은 도망칠 수 없는, 존재론적인 불안입니다.
만약 당신이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 선택은 단순히 '나만 점수를 잘 받을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부정행위를 한다면, 당신은 '부정행위는 괜찮다'는 보편적인 기준을 스스로 세우는 것이며, 이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해도 좋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이 거대한 보편적 책임감 앞에서 당신은 깊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2. 내던져짐/유기 (Délaissement)
우리를 이끌어줄 신도, 정해진 도덕법칙도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내던져짐(혹은 유기)'을 느낍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정해진' 운명도, 존재의 의미도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 던져졌고, 스스로 모든 것을 창조해야 합니다. 이는 동시에 '어떤 것에도 기댈 수 없다'는 절대적인 외로움을 의미합니다.
3. 절망 (Désespoir)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을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타인의 반응,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 그리고 죽음과 같은 궁극적인 한계들 말이죠. 사르트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기대거나 거기에 희망을 걸지 말고,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의 행동과 의지에만 의존하는 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이는 허무주의적 절망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세상을 마주하는 결단력을 의미합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사르트르의 자유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다움'을 찾고, '무엇이 옳은가'를 고민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직면합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타인이 만들어놓은 이상적인 삶을 보며 방황하거나, 남들의 시선에 갇혀 진정한 나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르트르가 말한 '자의식(bad faith)'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진정성 있는 선택: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압력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선택하세요.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불안은 자유의 증거입니다.
2. 책임감 있는 행동: 나의 모든 행동과 말은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 세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떤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그에 따라 책임감 있게 행동하세요.
3. 스스로에게 의미 부여하기: 우리는 정해진 의미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실존적 삶입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르트르의 자유론은 급진적이고도 도전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이 '자유'라는 개념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 이마누엘 칸트: 칸트에게 자유는 도덕 법칙에 대한 자율적인 복종에서 옵니다. 외부의 욕망이나 충동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세운 보편적인 도덕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보았죠. 사르트르의 자유가 모든 것을 창조하는 급진적 자유라면, 칸트의 자유는 이성을 통해 도덕 법칙을 따르는 자유에 가깝습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 또한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사르트르처럼 '총체적 책임'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보기보다는, 삶을 긍정하고 자신만의 '권력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극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자유를 역설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이들과 달리, 신도, 본질도, 정해진 길도 없는 허무한 상태에서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신중하게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는 것이 사르트르 자유론의 핵심이죠. 우리의 모든 행동은 우리 자신을 규정할 뿐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자유롭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유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며, 벗어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자유 앞에서 도망치려는 시도(예: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됐어" 등)는 '자의식(Bad Faith)'이라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자유는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그 자유를 온전히 끌어안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선험적인'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죠. 절대적인 자유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기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스스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위대한 가능성입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사르트르의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는 말은 처음 들으면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저주는 동시에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기계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를 창조하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결정하며, 그 모든 것에 책임을 지는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그 선택이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세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함께 사유하며, 주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기를 응원합니다.
나의 일상 속에서 '자유'라는 개념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요? 내가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은 무엇이었으며, 그 결정의 무게는 어땠나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