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일본, 온갖 외래 사상이 뒤섞인 혼돈 속에서 한 사내가 고독하게 붓을 들었습니다. 그는 의사였지만, 병을 치료하는 대신 수십 년간 낡은 고대 문헌, 『고사기(古事記)』에 매달렸습니다. 중국의 유교, 인도의 불교가 일본의 정신을 지배하는 현실에 그는 깊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과연 우리의 진정한 정신은 무엇인가? 외래 사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일본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이름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불편한 진실’에 맞서, 일본의 ‘고유성’을 파고드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 일본의 고유한 정신을 찾아서
• 그는 고대 문헌 연구를 통해 국학(國學)을 창시하고, 일본 고유의 미의식인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를 강조했습니다.
• 이 사유는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나다움’과 ‘우리다움’을 어떻게 정의하고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2. 내 문화의 '고유한 아름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 글로벌 시대에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개방성을 유지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살던 18세기 에도 시대는 외견상 평화로웠지만, 사상적으로는 격변기였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불교는 이미 수세기 동안 일본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죠. 하지만 노리나가는 이 ‘수입된’ 사상들이 일본인의 본래 모습을 왜곡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유교의 이성 중심주의나 불교의 허무주의가 일본 고유의 정서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서양 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의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그는 일본의 ‘참된 마음(眞心)’을 찾기 위해 오랜 고민 끝에 그 답이 고대 일본의 문헌, 특히 ‘고사기’와 ‘만엽집’에 숨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이 고대 문헌들을 ‘외래 사상’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형태로 연구함으로써, 일본 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정서를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탐구가 아닌, 일본 정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치열한 실존적 몸부림이었습니다.
노리나가는 평생 고향인 이세(현재의 미에현)를 떠나지 않고 의사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삶은 책상 위에서 펼쳐졌죠. 그는 무려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사기』에 주석을 달아 『고사기전(古事記傳)』이라는 방대한 저작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문헌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일본인의 고유한 정서와 사고방식을 발굴해내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진정한 '일본다움'을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국학(國學)과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 쉽게 이해하기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정립한 사상을 국학(國學)이라고 부릅니다. 국학은 ‘우리나라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외래 사상이 아닌 고대 일본의 신화, 문학, 언어 등을 연구하여 일본 고유의 가치관과 정신을 탐구하는 학문 운동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국학의 핵심에는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모노노아와레는 직역하면 ‘사물의 애수’ 정도로 풀이되는데, 단순히 슬프다는 감정을 넘어선 복합적인 미의식입니다.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란?
상상해보세요. 벚꽃이 만개한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질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지는 느낌. 또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가슴 벅차지만,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느껴지는 덧없음, 그리고 그로 인한 묘한 감동. 이것이 바로 모노노아와레입니다. 모든 것의 덧없음(무상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깊이 공감하고 애착을 느끼는 일본 특유의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반짝이는 무대를 보며 환호하지만, 언젠가 그들의 전성기가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에 묘한 서글픔을 느끼는 것. 혹은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했던 물건이 낡아가는 것을 보며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 물건과의 추억을 다시금 되새기는 따뜻한 감정.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모노노아와레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국학은 단순히 과거의 일본을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사유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사상에 노출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외부의 영향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기보다는, '우리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탐색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리나가는 바로 그런 '본질 찾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입니다.
또한, 모노노아와레는 빠르게 변화하고 소모되는 현대 사회에서 잠시 멈춰 서서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는 지나친 물질주의나 효율성 추구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으며, 나 스스로가 만족하는 '나다움'을 찾는 과정은 노리나가가 일본의 고유성을 찾던 여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잠시 멈춰서 내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모습일 때 가장 '나다운'지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한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탐구했다면, 다른 철학자들은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이나 다양한 문화의 상대성에 주목했습니다. 예를 들어, 18세기 독일의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역시 각 민족이 고유한 '민족 정신(Volksgeist)'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민족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노리나가의 국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면, 칸트와 같은 보편주의적 철학자들은 문화적 특수성보다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 원리나 이성을 추구했습니다. 이처럼 철학은 '고유성'을 파고드는 여정인 동시에, '보편성'을 탐구하는 여정입니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은 오늘날에도 문화적 정체성과 인류 보편적 가치를 논할 때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만약 노리나가가 칸트와 만났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칸트는 "모든 이성적인 존재는 보편적 도덕 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고, 노리나가는 "하지만 인간의 감수성과 문화적 배경은 그 보편성을 다르게 해석하게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대화는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철학의 오랜 질문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어떤 사상이든 극단으로 치달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노리나가의 국학은 원래 외래 사상으로부터의 독립과 자국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학문적 탐구였습니다. 하지만 후대에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의 정당화에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어떤 사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가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다움'을 찾는 과정이 타 문화를 배척하는 배타주의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모노노아와레는 일본 문화에서 특별히 발전하고 명명된 미의식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아름다움과 덧없음에 대한 보편적인 감수성이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인식하느냐에서 문화적 차이가 드러날 뿐이죠. 벚꽃을 보며 느끼는 덧없음은 일본인에게는 모노노아와레지만, 한국인에게는 '꽃은 피고 지네'라는 정서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수성을 인식하고 삶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국학은 단순히 일본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창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땅의 정신, 즉 우리 문화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특색을 탐구하도록 이끄는 초대장입니다. 그리고 모노노아와레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련한 감동을 포착하라고 속삭입니다.
우리도 노리나가처럼, 자신만의 '진정한 모습'과 '우리 문화의 고유성'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철학은 그렇게, 우리를 더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나침반이 됩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아와레'를 느꼈나요? 그리고 당신의 '고유함'은 무엇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요? 주변의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 덧없음과 아름다움 속에서 당신만의 '모노노아와레'를 찾아보세요.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