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6년, 스물세 살의 젊은 학자가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그는 전 유럽의 학자들을 초대하여 900개의 철학적 명제에 대해 공개 토론을 벌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준비한 서론, 일명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은 당시 교황 인노첸시오 8세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될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는 왜 그토록 담대한 주장을 펼쳤을까요? 그리고 그 주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핵심 통찰 정리
• 이러한 '자기 창조의 자유'가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의 근원입니다.
•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 중심적 사유를 집약하며, 현대인의 자아 탐색과 성장에 깊은 영감을 줍니다.
2. 당신을 '당신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3. 스스로를 창조하는 자유는 어떤 책임감을 동반한다고 생각하나요?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피코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격동의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습니다. 신 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하던 중세와 달리,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재발견을 통해 인간의 이성과 능력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망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는 물론 히브리어와 아랍어까지 통달하며 유대 카발라, 이슬람 철학 등 동서양의 방대한 지식을 섭렵했습니다. 그는 모든 학문과 종교에 흩어져 있는 진리의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통일된 지식 체계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 탐구 과정이 그의 독특한 인간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피코는 23세에 900개의 논제(Conclusiones)를 발표하고 이를 로마에서 공개적으로 논박하겠다고 선언하며 당대 지식인들을 초청했습니다. 이 논제들은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물론 헤르메스주의, 유대 카발라 등 이질적인 사상들을 통합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중 일부가 이단적이라는 교황청의 비판을 받게 됩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은 이 방대한 논제들의 서론 격으로, 인간의 특별한 위치와 자유를 옹호하며 그가 추구했던 지식 통합의 대의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존엄성’ 쉽게 이해하기
피코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에서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모든 존재에게 고정된 본성을 부여했지만, 오직 인간에게만은 아무런 고정된 본성을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대신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자유와 능력을 부여했다고 설명합니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인간은 스스로 노력하여 동물처럼 저급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천사처럼 신성한 존재로 고양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신이 인간에게 한 말: “스스로를 빚어라”
피코의 연설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신이 아담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대목입니다. “어떤 정해진 거처도, 어떤 특정한 모습도, 어떤 고정된 선물도 너에게 주지 않았다. 너는 네 의지에 따라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네가 바라는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으며, 네가 택하는 선물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 너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는 자로서, 너의 형상과 품위를 스스로 만들어가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프로그래머'나 '예술가'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스스로 공부하고, 연습하고, 경험하면서 '프로그래머'가 되거나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다른 분야와 융합하며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피코는 이러한 우리의 '선택하고 변화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존엄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피코의 사상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강력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피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외부의 힘이나 정해진 운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자유로운 의지와 자기 창조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1. 자기 계발과 성장: 현대 사회의 자기 계발 열풍은 피코의 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며,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가려 노력합니다.
2. 정체성 탐구: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고, 여러 페르소나를 오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고정된 본성이 없는 '카멜레온 같은 인간'이라는 피코의 통찰을 떠올리게 합니다.
3. 책임감의 중요성: 무한한 자유는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를 스스로 선택하는 만큼, 그 선택에 따른 결과와 책임 또한 온전히 우리 몫입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피코의 사상은 중세적 인간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후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세적 인간관: 아우구스티누스나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 신학자들은 인간을 신의 피조물이자 죄성을 가진 존재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신의 은총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세상의 모든 질서는 신에 의해 정해져 있다고 여겼죠. 피코는 이러한 고정된 신분과 본성 개념을 깨뜨리고, 인간의 능동적인 자기 형성을 강조하며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실존주의 (사르트르):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본질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 정해진 본성이 없으며, 존재한 이후 스스로의 선택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피코의 '자기 창조의 자유'와 매우 유사하지만, 사르트르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이 자유가 인간에게 '저주'처럼 느껴질 수 있는 무한한 책임감을 동반한다고 보았습니다. 피코의 자유가 신의 선물이었다면, 사르트르의 자유는 신의 부재에서 오는 고독한 책임이었죠.
더 깊이 생각해볼 질문들
피코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했지만, 이는 동시에 인간에게 큰 책임을 부여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으므로, 인간은 스스로 '하위의 삶'(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고귀한 삶'(이성과 영혼을 고양시키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피코는 이 자유로운 선택이 곧 도덕적 책임으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단순히 인간 찬양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에 대한 엄중한 요청이기도 합니다.
피코는 인간의 내재된 잠재력에 주목했지만, 당시 사회적 계급이나 환경적 제약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현대 사회 역시 개인의 노력 못지않게 교육, 경제력, 사회적 지지 등 외부 환경의 영향이 큽니다. 피코의 사상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우리는 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과 공정성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보며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은 단순히 르네상스 시대의 한 문헌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매 순간 우리의 선택과 노력으로 스스로를 빚어가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자유와 존엄성은 동시에 우리의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얹어줍니다. 어떤 존재가 될지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피코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가 겪는 정체성 혼란과 방향 상실의 시대에, 우리 내면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도록 격려하는 깊은 영감을 줍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모습의 당신을 창조하고 있나요? 당신의 자유는 어떤 책임을 동반한다고 생각하나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당신만의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철학적 사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뿐이며, 여러분만의 생각과 성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해보고, 스스로 질문하며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철학의 본질입니다.